작년 여름으로기억된다.
좁지만은않은 방에서 냉풍기를 머리에 이고서 제법 단란한 가족과함께 휴일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여름이라면 당연히 더위와는 상관관계가 있음을 몇 수십년을 살며 터득한 지혜인터라 당연히 밖의 더위는
그 전 날 방송에서 폭염주의보를 누 차례 내 보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미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찬 바람이 내 전신을 감싸안음을 오랫동안 즐겼던 이유에서인지 현기증과 답답함을 어느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곧 내 딸에게 창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고 금새 그 창문은 삐걱 소리와함께 열리고말았다.
`헉`…
오전 내내 에어콘을 켜 놓았던 실내가 그 창문이 열렸을 때, 한증막과같은 이상기온을 보였다.
모든 것들을 다 일 순간 마르게 할 만큼의 열기 바로 그 것이었다.
공포라고 표현해야 할지…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못했다.
습기라고는 조금도 베어있지않은 그 삭막함은 강원도 그 뙤약볕에서조차 한 순간도 느껴보지 못했던 바로 그 것이었다.
열기라고 표현하는 낱말들은 어감이 썩 나쁘지만은않다.
아니, 참 삶을 통해서 흥겨워지고 짜릿함까지 동반하는 묘한 동기까지도 부여받는 축복의 단어라고 항상 생각해왔었는데…
그 때의 밖에서 불어오는 열기는 과연 공포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것이었다.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세상의 종말에서나 느낄 수 있다고 해야할지…
그러나 평소에 보았던 지인들을 그 다음날 볼 수가 있었으므로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열기라고는 다소 무리가있을 듯하다.
지금 뉴욕을 포함한 세계가 또 다른 열기로인해서 공포를 체험하고있다.
모든 것을 다 말려버리고 태워버릴 듯한 열기…
그 열기는 걸음을 늦추게하고 식욕을 잠재우고있으며 인위에의한 처절함에대해서 엎드려 삶에 굴복하겠노라고 강요를 종용하게
할 만큼의 높은 온도를 가지고있다.
인생들의 심장이 다 타버릴 것같은 열기!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내 정다운 이웃들을 그 해와 다르지않게 볼 수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므로 나는 지금도 미소를 짓고있다.
그 해의 그 다음날처럼…
내가 처음 이 거리를 찾았었던 때부터 벌써 이 십여 년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너의 수고로움에 나는 말 못할 고마움에 매일 아침마다
너를 만져주고 무탈하기만을 기원했었다.
한 자리에 그 처럼 오래 서 있을 수 많은 너와 같은 이들이 있겠지만 그러나 너의 각별함은 내게 다른이와 비교 할 수없을 것이다.
눈이 네 발에 쌓일무렵이면 나는 하얀 덧신을 신은 네 모습에 하얀 세상을 보게되었고
낙엽이 수북이 쌓일때면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오는 세월의 외로움과 동락함을 애써서 즐거워했었고
천둥과 벼락이 치고 비 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때면 너의 아픈 가지들을 생각하며 내 터전의 전경을 안타까워했고
하얀 계절이 가고 춘 풍이 불어올 때면 자라나는 들풀들을 보며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짖 밟아 버린 네 봄 친구들의 안부를 조심스럽게 물었던 수 많은 날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텅비어버리고 점점 야위어져가는 네 몸뚱이를 보며 안타까움에 쓰다듬고 보듬으며 부디 내 생전에 너와 끝없는 동거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희망했었는데…
이제는 너의 수고로움과 내 희망의 날에 종지부를 선고한단다!
네가 서있지않은 수 많은 날들을 지금부터 나는 보아야 한다기에
아직 후덥지근한 이 가을아침에 나는 우두커니 네 옆을 지키며 지난 날들을 회상하고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너를 지켜주기를 간절히 고대하는 마음으로
네 생애 마지막의 그 날은 네 몸뚱이를 껴안고
또 너의 야위어져가는 몸뚱이의 몇 년 더 이어질 추억을 기대하며 나는 네 곁을 지키리라…
-숲정이 마을의 고목나무를 보며 2011년9월14일-
자기만의 공간에 갖혀사는 어린 인물들을 볼 때마다 무엇인가 조언을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있는 자신의 삶을 어렴풋이 느끼는 듯은 한데 완전한 자아의 깨달음을 다는 못 깨달은 듯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같다.
누군가를 아는체하지않고 차라리 무시하고 살아가는 현상이 어떤 영향에서인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인간닯지않은 것만은 사실인것같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는 잘못된 경쟁구도 탓으로 인한 '자폐증상'인지 자연에 대한 불신인지 또는 자기 삶에 대한 어떤 성찰을 너무 잘 깨달음인지는 뚜렷하게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자기를 향해서 웃어주는 것을 느낄 때오는 뿌듯함이 많이 사라져 버린지 오래인 듯하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의자를 내어주며 뿌듯함이 가슴을 져며오는 횟수가 많을 수록 배려를 통한 측은지심이 진정성으로 뿌리내림을 잘 알고 있는 우리의 가슴은 이미 멍들어 있다.
막연히 생각한 끝에 멀지만 가까운 지인들의 삶을 유추해서 어거지로 강의를 시작했다.
나지막하지만 힘차게 외치는 빌 클린턴과 부시와 브룸버그의 삶 속에는 타인을 배려하는 공경심의 삶이 함께했을거라고 역설했다.
이어 어린인물들은 ‘네가 그 사람들을 그렇게 잘 알아?’하는 조소 섞인 표정을 연출해 냈지만 나는 곧 논리로 맞 대응했다.
수 많은 도전의 과정 속에서 일어났던 많은 헤프닝들은 그 들의 공경심과 존경심의 습관이 타인을 감동케 했음으로 극복 할 수 있었노라고…
제 집의 이웃에 사는 사람들조차 무시하고 살아온 인물이라면 그들이 오늘날에 세계를 움직이고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을 수는 결코 없었을 거라고 괘변아닌 괘변을 토해 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타인을 향한 존경심의 발로가 확실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고개를 숙이면서 존경심을 나타내는것도 좋겠지만 마주보며 백합꽃같이 웃어보이는 것도 세상을 움직이고 상대를 기분좋게 하는 결과가 아닐런지…
내집에 있는 미키가 그렇게도 예뻐 보이는 것은 때때로 잃어버렸던 식사대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꼬리흔듬의 ‘아는체’ 그 것이 아닐런지.
모든 부모님과 사회의 구성원들이 우리의 어린 인물들에게 꼭 가르켜야 할 것은 영어와 수학, 과학보다도 그리고 소셜스터디 보다도 타인과 함께 하는 ‘인사’가 아닐런지…
하바드 보다도 코넬보다도 컬럼비아대학 보다도 상대를 보고 웃어주는 방법을 먼저 가르키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하지 않을런지!
보스턴 츄립의 목적은 아이비리그 탐방이었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하바드 대학교의 부속시설과 설립자의 동상에 얽힌 에피소드는 행여나 요 어린녀석들의 오기를 발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과 기대 속에 긴 여정을 이끌게 되었다.
곧 기대는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가이드의 의욕과 자부심과는 반대로 녀석들은 90분 간 몸부림을 쳤으며, 큰 녀석들은 선물가게 방문을 진심으로 내색하기 시작했다.
훗 날에 일어날 오기를 기대 할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시간에 쫓기며 MIT를 방문했다.
세계적 석학들의 연구와 결과물들을 견학하고 싶었지만 그러한 여건은 우리에게 허락되어지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뉴욕으로 발길을 옮겨야만 했었다.
보스턴으로 챠량을 운전하던 중, 배터리를 갈아야 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은 몇 시간 전 이었었고 우리 몇 몇 오래 산 것들은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를 조급하게 했으므로 그 귀향의 발걸음은 빨라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자연스레 이뤄졌었다.
운전 중, 배터리 점검을 알리는 불을 보았을 때에 나는 틀림없는 얼터네이터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츄립일정에 대한 향방을 계산하려고 생각해본 기억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내 가슴 속에서는 이미 결론을 내고 있었다.
오고가며 8시간의 배터리양을 충족실 수만있다면 극단적인 귀향은 필요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그 것이었다.
그리고 늦은 저녁 뉴욕까지의 귀향시간까지는 몇 몇 녀석들의 일탈을 포함한 원망과함께 무사히 끝을 낼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과 또 다른 그 다음날까지 나는 움직일 수없는 내 몸과 싸워야만했다.
힘겨움과 바꿨던 소중한 진리!
무쇠덩이에 감춰진 만고의 진리가 내 앞에 있었음을 나는 수 십 해를 지나고서야 알게되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이 자동차에 갇혀진 배터리와 충전기의 상관관계로 해석이 가능할 줄이야...
연료를 에너지로 바꿔주는 최초의 동력, 밤에 불을 켜서 길을 밝히는 동력, 방향을 모두에게 알려는 지시등의 역할이 배터리의 주된 업무라고만 배우고 생각했었는데, 이 일방적인 역할은 배터리의 방전으로 인해서 곧 한계점에 이르게 되었고...
그 배터리의 동력을 엔진에 주어서 충전기를 돌려줘야 '피드백'이 이뤄져서 다시 배터리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back up의 관계가 절대 필요하다는 진리가 자동차를 계속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귀한 진리!
그 두가지의 구성물이 훨씬 자동차를 무겁게도 할 수있고 복잡하게 할 수있었겠지만 나는 그 필연성을 존경하게 되었고 새삼스럽게도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설계한 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철 없던 시절, 그 곱던 어머니의 얼굴은 백만 번도 더 되게 일그러지셨었다.
작은 일에는 더 그러셨고 큰 일에는 오히려 덜 일그러지셨었다.
반대의 상황이 맞을 듯도 한데 큰 일에 아량을 베푸셨던 울 어머니는 대범하셨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사업의 문제가 발생 할 때면 그 고운 얼굴에 일그러진 표정까지도 사랑스러우셨던 울 어머니는 거침없이 그 얽힌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 놓으셨었다.
따라서 몇 번 보지 못했던 아버지와 삼촌들 그리고 나는 말 할 것도없이 할머니까지도 울 어머니의 존재는 가히 초능력자처럼 신망의 대명사가 되어있었다.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유일한 존재!
울 어머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 능력에 찬사를 아낄 수 없었음은 물론이며 그러한 어머니의 에너지는 모두가 외할머니를 부러워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환갑이 도래하기 2년 전의 어느 날.
그 찬란한 어머니의 업적이 더 이상 존속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뇌출혈이라는 처음으로 들어봤던 병이 어머니를 급습한 후, 더이상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빛 나는 활동은 사망신고를 하게되었다.
지금 나는 이세상과 이별하신 어머니를 감히 생각해 보았다.
집에 무사히 도착한 그 다음날 나는 고속도로에서 금방 엔진이 꺼질 것만 같았던 그 상황 속에 있었던 배터리의 안타까운 마음을 보았다.
더 에너지를 공급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그 처절한 안타까움!
충전의 피드백이 없는 허망함 속에서 미래를 두려워 하던 중 종국을 맞았던 그 배터리의 눈물!
울 어머니의 그 안타까움 마음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가족의 격려가 없는 긴 세월은 어머니를 한 없이 지치게 했었으리라...
나는 고장난 alternator였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회색인 듯 보이지만, 그래도 뉴욕의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때로는 들끓음조차도 나에게 신이 내리는 '걸림돌이라는 선물'이 될 수있다고 생각해왔다.
한때는 '폭풍질주'를 꿈꾸어왔었고 뒤이어서는 '무소의 뿔처럼'이 내 힘의 원천인양 최면의 상태를 유지했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상태를 찬찬히 바라보던 중에 나는 문득, 그 무엇의 하나가 통채로 빠져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래되어버린 습관처럼 알면서도 교정하지 못하는 답답함이야말로 헤아릴 수없는 고통이었음은 물론이며 자괴감이 썰물처럼 일어났었지만, 문제의 발견은 해결이 도래했음을 생각하며 오늘의 걸림돌을 두 발짝 떨어져서 하루가 지난 지금 바라보고 있다.
걸림돌은 자연다운 것이었다!
우리가 거부하고 싶었던, 그러나 당연히 존재 해야만 하는 것들.
내 앞에 놓인 걸림돌들을 유연하게 바라보고 넘어서는 것은 인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 것마져도 사랑해야하는 삶이 내 앞에 도래하여 질 때 쯤이면 그 걸림돌들은 나를 자괴감에 빠트리고 몸부림치지 않게 할 수 없음은 물론이며 그 것까지도 사랑하게 될것이다.
그 것으로 인한 사랑은 고통을 넘어서는 '자연'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위성이 빠져버린 유연함은 태산을 넘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만아니라 수평선없는 대양을 헤엄치기기 전 두려움없이 여유로 바라볼 수 있을것이다.
걸림돌로 인한 조급증이 세상을 지배하는 듯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속한 우리의 삶에는 억만년 전의 그 자연스런 바람과 여전히 동화되어 살고 있음을 잊을 수가 없게된다.
측은지심을 잃어버린 세상은 이미 험한 세상이 되어버린지 오래되었으며 그 다리는 균열되어 가고 있다.
그 결과는 걸림돌을 인위적으로 받아들여버린 우리의 책임이 아닐런지...
지금은 무엇을 남겨놓아야 할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됨직한 걸출한 인물들이 꿈꿀때까지...
여기 대통령이면서 시민이고자 했고 정치인이면서 정의롭고자 했으며 권력을 잡고도 힘없는 자 편에서 현자였으나 바보로 살아 마침내 삶과 죽음까지 하나가 되도록 온몸으로 그것을 밀고 갔던 한사람이 있으니 그를 미워하면서 사랑했던 우리는 이제 그를 보내며 영원히 우리 마음에 그를 남긴다. . -공지영(소설가)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 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 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을 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 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 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
뉴욕시 교육감 죠엘 클라인은 2009년 9월부로 뉴욕시 학교의 징계및 중재기준을 발표했다.
오래 전부터 미 교육 당국의 행정은 공청회등을 거쳐서 정부가 의견을 수렴하고 실행해 왔었지만 최근에는 완결시키지 못 했었던 또 하나의 교육 안이 해결 점을 향해서 항해를 시작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항해가 쉽게 목적지에 닿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 세계 교육 행정부문에서 타 국가에게 높은 교육적 위상을 자랑하기 까지에는 교육의 기본법이 완성된 후에도 보완 점 발생과 동시에 전면적으로 쉽게 고치고 빠르게 해결하려는 노력에 앞서서 그 당면 문제 점들을 사회와 교육의 당사자들이 서로 의견을 결집하여 그 테두리안에서 그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의지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일년에 몇 차례 씩 이뤄지는 학부모 컨퍼런스 와 교사 컨퍼런스는 밑 바닥부터 모든 행정에 대해서 열어놓고 논하며 그리고 허심탄회한 토의를 두려워하지 않고 교육당사자와 부모들은 교육행정이나 자녀의 학사관리 는 물론 정부의 교육에 대한 예산까지도 질의하고 답을 듣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미국 교육의 양질성을 추구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지금에 이르게한 이유가 되어왔다.
즉 단기적인 행정보다는 미국이 선택한 교육시스템은 장고의 세월을 거쳐 차근차근 계단을 놓듯이 완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육의 모든 교육 시스템도 미국의 교육행정과 같이 한 단계씩 변화 되고 있는 모습을 볼때면 곰탕을 끓여 내듯이 오랜 공을 들여서 부디 완성시키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요즈음 인터넷을 보면 일선 교육행정과정 중에 발생한 여러가지 이슈가 한국을 달구고 있다.
수면위로 실체가 들어나 있지는 않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특히 서울시 교육행정에 관한 이슈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연결고리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교육 정책까지도 도마위에 올리고 있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가 하면, 이제는 그 도를 넘어서 좌우를 논하기까지의 행태로 변해가고 있다.
결국에는 그 두 정부의 실정의 결과가 지금에 이르른 듯한 의견이 대한민국 주류 언론들에 의해서 고개를 들리워 지기 시작하자 이제는 현 정부와 전 정부의 교육행정에 대한 대립구도로 발전해져 버렸고 아울러 진보 교육감의 새로운 정책은 붉은 색으로 덪 칠 하여져가고 있는 참으로 황망한 상황들이 전개되어 지고 있다.
마침내 좁은 땅덩어리가 마치 용광로 처럼 들끓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사상과 정책에 기인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주장이 옳고 그릇되고를 놓고 교육의 행정 수혜자를 곤혹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백년지 대계인 미래 교육은 우리 모두가 수혜자이며 이제는 구태의연하고 낡은 것을 버리고 쇄신의 깃발을 들자는 교육혁신의 바람에, 존재하는지 조차도 모를 좌우가 논쟁 화 되어져서 추태를 벌이지 않기를 고대한다.
미국의 교육은 우리 한국과 이런 점에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념과 사상은 교육의 현장에서 철저히 배재 되어져서 중립 화 되어져가는 보다 나은 백년대계를 꿈꾸기를 희망한다.
인간의 이성을 맹신해서도 안 되고 배제해서도 안 되지만 이제는 그 양 쪽을 대한민국에서 잠시 몰아내야 할 과제인 듯하다.
숭고한 교육의 현장에서의 참 교육의 가치관이 전 것이 옳고 현재가 옳고하는 그 얄팍한 지식과 주장은 잠시 접어두고 지극히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하등 생물처럼 더듬이를 활용 할 때인 듯하다.
이제 미국 교육이 징계및 중재 기준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예전에도 존재 했었지만, 지금은 좀 더 구체적인 장문의 서류가 내 책상위에 있다.
그 현상은 깊게 논 할 필요도 없다.
‘학교의 버거움’을 새로운 기준에 의존하고 싶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체벌금지와 인류의 교육!
단순한 듯 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명제.
지금부터 우리는 곰탕을 끓여가는 미국 교육당사자들과 정부와 학부모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하며 그 들의 ‘더듬이’ 활용을 눈 여겨 봐야한다.
까뮈에게 태클걸기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정상까지 밀어올리는 것도 끔찍하기 짝이없는 일일텐데 정상의 싯점에 도착하여 한숨 돌리려는 순간 그 바위덩어리가 시발 점으로 다시 굴러떨어진다면 그 처럼 허무하고 황당한 일이 없을 것이다.
신의 노여움을 산 이 위인은 그 형벌로 인해서 더 할 나위없는 절망스러움에 찰나의 호흡조차 감당하기 어려웠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듯 하다.
실존주의 철학자 까뮈는 이 시지프스 신화를 자신의 달필을 통해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며 이루고자 노력했던 모든 욕망들이 인간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에 대해서 부조리라고 표현하였다.
세상의 모든 이치들은 자신이 정말 원 하는 것이면 정 반대로 향하게 됨이 다반사이며 그로 인해서 절망할 필요도 없고 결국 초연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내외적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시지프스의 신화를 이끌어 내어 그 논리와 부합시키고자 했다.
즉 부조리의 삶에 노출된 자신의 인생을 인정함이 우선 되어져야만 내외적인 평상심을 가질 수 있고 아울러 삶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매력적인 이론이다.
그러나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처럼 삶이라는 바위덩어리가 반드시 원점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삶 가운데서 노력을 경주하다가 보면 그 무개 중심이 앞으로 변하여져서 대부분의 바위덩어리는 그 다음의 굴곡을 향해서 굴러가고 또 새롭고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르는 수고를 인간들은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가 현 세대의 인간과 시지프스 신화의 위인과 다른 삶일진데 까뮈는 실존주의 철학자라는 당대의 저자로써 그 핵심을 간과해 버렸다.
원점으로의 회귀에 대한 절망과 전진을 위한 굴러 떨어짐의차이!
그래서 시지프스의 신화는 까뮈가 다시써야만 될 저서가 되었다.
복잡한 지층을 뚫고 세상 밖으로의 물길 여행이 옹달샘을 만든다.
지표면에 도달한 물줄기가 한 군데 고여져서 더 이상 물줄기의 공급활동이 중단 된다면 이 물은 더 이상의 옹달샘이 아닌 곧 썩어져서 악취가 진동하는 폐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움직이는 물은 자연과의 친화 속에서 끊임없는 요동침과 부딪힘을 통한 자정을 이행함은 물론이며 더불어 물은 자연에게 생명 줌을 수행 할 수 있었다. 깊은 산 골의 물과 지상에 널려있는 헤아릴 수 조차 없을 옹달샘들이 은혜의 혜택을 모든 생물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세상에는 귀 기울여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길을 가자면 들어야 할 것들과 들려오는 것들이 부지기수 만큼이나 많다.
옹달샘의 귀중한 자연됨은 움직임을 통한 정화로 가능했 듯이, 길가를 걷자면 스쳐 지나가고 있는 바람하며 거대 목에 여기저기 달려있는 나뭇 잎들의 애환들이 온 세상을 향해 끝없이 말하고 있고 그 표현은 지금도 계속 되어져서 세상에 말들을 남기어 가고 있다.
복잡하고 난해한 모든 허브를 떼어내 버리고 이 들이 말하는 자연을 들어봄이 필요한 소중한 시기가 도래하는 것 같다. 인위적이며 제작 되여 지는 세상 속에서 그 인위성을 꿈꾸며 묻혀져 가는 스스로의 우리를 스스로 자정 해야 할 때가 도래하면 좋을 듯하다.
오늘은 귓가에 꽂은 인위 물에서 흘러나오는 무엇인가를 듣고 세상과 담을 쌓아버린 어린 영혼에게 불쑥 참견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영혼은 나에게 비수같이 질문해 왔다.
‘당신에게 보이는 바람과 나뭇 잎들이 뭐라고 말 하던가요?'
'음........그 것에 갇힌 너에게 자기들의 노래를 듣도록 알려주라고 하던데!’
북한에 새 시대의 바람이 부는 듯하다.
그 새 시대의 바람은 평온만을 위한 바람일 것이라고 기대 할 수 없을 것임은 물론이며 한반도에 어떤 이상 기류를 몰고 올지는 여섯 개국 뿐 만이 아니라 그 외의 국가들도 유추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재까지 14년이라는 체재 안정 기간이 흘러간 반면 김정은이 정권에 부상하는 기간은 고작 2년이 되지 않고 있다.
설령 김정일 주석 사후에 정권이 김정은의 체재로 돌아갈 때까지 몇 년의 시간이 지속 되어 질 지는 알 수 없지만 머지않은 미래가 될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김일성이후 혁명 일세대의 막강한 정치 기반은 현재까지 북한 정권을 안정시켜 왔었지만 이제는 대부분 혁명 일세대의 정치권 퇴임이 현실화된 이상 북한의 정권이 이완되리라는 논리는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얼마 전 천안 함 사태 후, 김정일 주석은 중국을 방문했다.
그 후의 변화를 보면 북측은 천안함의 북측 공작 설에 대해서 미국과 한국을 대상으로 벼랑 끝까지도 가고자하는 의지를 단시일에 접었으며 러시아는 북측 무관 설을 공식적으로 접고 함구하며 미국은 부시 정권에 보였던 북조선 혐오 론을 종식시키고 북한에 대해서 유화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또 한국은 이명박 정권이 조각됨과 동시에 전 정권에 대해서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댐은 물론 ‘대북 퍼주기의 숨겨진 진실’ 또는 전 정권 10년과 북측에 대한 ‘상호 정경 커넥션 설’을 주장하던 것과는 반대로 북한을 적국으로 전환한 공식 입장을 철회 할 듯하며 이제는 대북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에서 대대적인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며 화해무드를 조장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안에 이루어진 한반도 중심 외교가 주는 의문에 대해서 우리가 유추 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겠지만 그 중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6개국의 기호가 서로 맞는 실리 외교가 배후에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실리외교 배후의 중심이 미국과 중국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관측 할 수가 있다.
그 동안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있어서 북한의 대중외교 성격은 화합을 전제로 둔 자주권을 추구하려고 노력 한 듯 했었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외교의 판이 짜여 진 모양새 속에서 지정학적인 수혜국 위치에 놓여 있던 구소련과 중국은 북한의 대외 외교관계를 조력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치밀한 자국의 이익을 염두에 둔 외교를 표방해왔었다.
한국과 맞닿아있는 상황과 일본과의 관계성 속에서 특히 중국은 동북공영의 외교를 정책으로 내세우며 세계 경찰국가인 미국과의 관계성을 이용하여 필요한 것들을 주는 듯 하며 동북공영의 기틀을 다져왔었다.
그것은 미래에 닥쳐올 북한의 무정부 상태 속에서 얻을 명분이 그들의 최종 먹잇감이며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북한은 중국의 종속국임을 미국과 남한에 천명함과 동시에 세계의 여론에 대해서도 북한의 흡수를 정당화 하려는 모략이 숨어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대중외교 관계의 입장이 이미 전환되었다.
과거에 미국은 대중외교에서 압박하는 외교를 이어왔었지만 지금은 구소련이 몰락하면서부터 대중 조율외교를 선언했다.
사실 경제적으로도 중국은 실리외교의 중심 속에서 세계를 향해 그 위치를 곤고히 함은 물론 미국과비교해도 이젠 경제적으로 자립도가 완성되었다고 할 만큼 과언이 아닌 경제대국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국과의 외교 마찰은 이미 득 될 것이 없다고 판단 한 듯하다.
이러한 외교관계 속에서 놓여있는 미래의 한국과 북한 모습은 어떻게 전개 되어 질지 우리는 논의해야 할 때 인 듯하다.
한반도 당사자인 한국과 북한의 모습이 수혜국이 아닌 비 수혜국으로 전락된다면 또는 비 수혜국이 수혜국으로써 기득권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역사에 죄를 짓게 될 것이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북한의 붕괴가 도래 한다면 훗날 세계사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다.’
깊이도 알 수 없고 무게도 알 수 없는 거대한 암석이 사람이 계획하고 구상한 구조물에 방해가 될 때와 정복해야 할 목표가 눈앞에 있고 엄청난 수의 무리와 장애물이 방해물로 나타날 때에는 원래 고안해낸 목적과 다르게 이 화약은 양면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형태를 보인다.
물론 그 각자의 실행자 무리는 다수의 동의하에 이뤄진 행위이므로 그 시점의 선택에 대한 이유는 크게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책임에 대한 경중은 크게 minority leader와 majority follower 즉 두 그룹으로 나눠지며 사람이 선택한 화약의 역할에 따라서 한 종류는 공사현장에서 사용되어지고 또 한 종류는 인마 살상용 화약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고금에 만들어진 수렵과 농경작물의 추수를 위한 도구도 시간이 흐르며 이해 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마침내 양면을 띄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누군가의 주장에 의해서 수렵과 농작물의 추수가 아닌 인간을 살상하는 무기가 되어 버렸다.
누구나 알고 있는 위의 사례들을 볼 때에도 생각의 차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굴절이 깊은가를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교육과 언론의 형태도 위와 별반 차이가 없다.
사람 사는 도리를 구하고자 추구하던 학문은 인간의 가치를 분별하는 다소 공격적인 형태로 변했으며 알고자 하는 정보에 대한 욕구는 이제 그 한계를 넘어서 목적을 가진 어느 형태의 그룹 속에 종속되어져서 그 그룹의 이익을 창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커다란 사회를 만들어 가면서 그룹에 속한 개인은 그 그룹 속에 속하여 개인의 이상을 실현하기위하여 그룹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 나와 있는 컴퓨터는 마지막 세대의 하드웨어라고들 말한다.
그 다음세대에 출현 할 차세대의 컴퓨터는 인체의 신경계통을 네트워크 화 하고 그 각 허브를 대뇌와 연결하여 CPU형태로 연동시키는 타입의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 기술력은 많이 집약된 상태이며 그 외에 대용량의 기억부분을 보강할 external chip을 대뇌 근처에 생리학적인 거부반응을 해결하고 내장하게 된다면 바야흐로 수퍼 휴먼이 탄생하게 됨은 기정사실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가까운 미래에는 인체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대용량의 기억, 연산은 물론이며 위성을 통 한 무한 한 정보 공유 및 군사와 제어가 인간이 가진 인체 동력을 이용해서 해결된다는 것 이다.
아울러 인간과 인간은 Lan을 형성하게 되고 인간을 통제하는 어떤 종류의 수퍼 수퍼 컴퓨터는 위성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의 Lan화된 보유 정보를 획득하게 되는 놀라운 세상이 도래한다고들 말한다.
일점일획의 오차가 존재하지 않을 세상을 향해서 우리는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를 책을 통해서 획득하지 않아도 또한 강의를 통하지 않아도 부족한 용량의 정보를 업데이트 할 chip하나로 해결 할 수 있는 사회에 노출될 차세대의 인간들!
이제는 영화에서나 보고 즐겼던 미래 사회의 모습을 인간 스스로 논의 할 때가 오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누군가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꼭 도래 시키고야말, 통제가 없으면 무서워질 그 사회를 위해서 우리는 토의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어야만 한다.
교육의 신이 모두가 열망하는 Edutopia를 선물하기 위해서 신의 세계를 떠나 인간의 뱃속에 태동을 시작했다.
모태 속에서도 그는 모든 부모와 자녀들의 편을 선언했고 그들을 위해서 입술을 깨물며 분개함은 물론, 처절한 이 교육현실에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오열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강림이 임박 할 무렵이 다가오자
수정할 교육법은 말 할 것도 없고 교재 개발함조차 게을리 하지 않음은 물론이며
세부사항으로 미적분과 영어를 3일 만에 정복하는 방법, 사탐과 과학과 음악, 미술, 세계사, 한국근대사, 역사, 체육 가사 도덕 정도는 단 하루 만에 정복하는 특화된 교육지도법을 구상하기에 이르러 마침내 완성의 쾌재를 불렀다.
그의 출현은 마침내 한국의 교육환경을 이렇게 바꿔 버렸다!
가정에서는 아침부터 힘겨운 학교보내기 전쟁의 이유가 없어졌으며
자녀들은 공부 없이 세상을 살 가치가 없다고 외치게 되었으며
부모는 공부를 적당히 하고 제발 놀면서 하라고 자녀 뒤를 쫒으며
선생님은 제자들이 사랑스러워서 두고 보기에도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되며
학교에서는 매 점심시간마다 최고급 뷔페와 초밥과 그리고 아사도를 무제한 공급하며
학교는 단 한 아이라도 교육에 대한 열망을 행복하게 도왔으며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 해외를 전전긍긍 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서울대를 마음대로 갈 수 있음은 물론 장학금 줄 테니 오라하며
학원들은 레크레이션으로 즐거움을 주고 행복하게 자는 법을 가르치며
따라서 상위3%의 개념은 물 건너 간지 몇 년 되었고........
이러한 교육환경의 도래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은 산과 들을 사랑함은 말 할 것도 없고
모든 콘크리트 숲 까지도 사랑하게 되어서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됨으로써 너무 행복함에 눈물 짖는
그리고 행복한 나날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런 사회가 되었다.
그의 출현이 이 나라에 행복한 웃음을 가져다주었음은 물론이고
이 시대 교육환경에 놀라운 귀감이 되었다.
수퍼스타의 탄생이었다.
역대 한국정부가 교육행정을 수 도없이 바꿔 왔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대안을 찾지 못 한 증거는 지금까지 정부나 학부모나 할 것없이 새롭고 이상적인 교육환경 실현을 위해서 지금도 쉼없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음을 보면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수시며 정시며 여러가지 대안에 대해서 말 들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미국의 대학 입시 형태를 모방하는 듯한 입시사정관 제도가 도마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새로운 제도에 대해서 혼선을 겪고있는 당사자 주체들도 이 방안에 대해서 분분한 의견들이 있지만 일부 지인들의 입에서는 다음 정권이 가기 전에 사장되어져 버릴 교육사에 헤프닝으로 끝날 것이라고 내다 보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볼때면, 교육불신이 어느 새 한국 교육 현실에 깊이 반영된 증거가 아닌가 생각되어져 착찹하기만 할 뿐이다.
사실 이상적인 교육대안은 있을 수없다.
손색없는 교육행정의 이상을 완성했다 할 지라도 정책 수뇌부부터 일선의 직원, 그리고 수혜자까지 그것을가꾸고져 하는 의도가 부재라면 그 이상적인 교육의 창의는 결국 사장되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육현실을 볼 때에도 성숙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해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그 문제 점들에 투명한 깃발을 꽂고 청문회, 크고 작은 공청회 그리고 교육당사자와 수혜자와의 끔찍하리만큼 기나긴 논쟁과 사법기관의 공조를 통해서 부단히 조율해오며 문제점들을 극복해 왔다.
따라서 미국의 교육행정과 교육현실은 한국과 비교해 볼 때 그리 훌륭한 교육행정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교육부가 국민으로 부터 지지를 받아왔던 이유는 정부정책과는 다른 개념, 마치 또 하나의 독립된 듯한 정부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교육부의 정책이 신 정부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국민의 사고 방식이 이미 충분히 성숙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교육실현의 선행조건은 국민이 먼저 '공의'를 쫒아야만 한다.
교육에서 이기심의 끝은 모두가 이상적인 교육을 받아야 할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교육의 방향은 방황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국가가 수혜자의 그룹임과 동시에 수혜자는 국가이므로 공의를 기반으로 한 정책을 수립하고 또 다른 이상적인 교육환경을 찾기 위해서 헛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그 공의를 긍정적으로 성실하게 토론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 할 것이다.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배타적 교육이기는 전체의 교육 공의를 멍들게 할 뿐만이 아니라 나아가 전체의 교육적 공의를 빼앗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먹었던 것 중에서 먹지 말았어야 할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나는 세상이 노랗게 변한다는 표현이 무엇 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단지 노랗게 변 해버린 세상 뿐 만이 아니라 몸을 가눌 수 없는 것은 물론이며 숨 쉬기 조차 어려웠고, 마침내 뱃속은 화산과 같이 들끓고 온몸은 땀을 비오 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정신은 어쩜 그렇게 맑았던지 병원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계산해 보았고 그 시간까지의 시간은 너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우선 치료를 받기 위해서 병원에 가는 동안 차 안에서 견디지 못 할 더러운 기분, 또한 오물을 토해내는 내 모습을 보고 있을 가족의 고통 등을 생각 했을때 추함을 보여주지 말아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뒤따라오는 가족들을 만류하고 서둘러서 걸음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옮겼다.
거기에는 수돗가 밑에 배수구가 자리하고 있어서 물청소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순간 살 수 있는 길은 손을 최대한 오므려서 목구멍 깊숙이 손을 집어넣은 후, 조금 전에 먹었던 음식물들을 토 해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음식물을 섭취 한지 10여분이 조금 지난 터라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급한 이유 하나가 그렇게 큰 손을 목구멍을 넘겨 위까지 쉽사리 닿게 할 줄이야!
눈물 콧물이 범벅됨은 물론이고, 체면정도는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나는 해 야 할 일들을 몇 분 동안 다 마쳐갔다.
그 것만이 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몇 분이 흘러 갈 즈음에 그렇게 요동치던 뱃속과 땀이 비 오 듯하고 숨을 쉴 수 없었던 신체의 공황상태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온몸에 열을 동반하고 뱃속이 용암처럼 들끓게 할 수 있는 음식물은 고추가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은 결과 고추에서 오는 allergie가 범인임을 확인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생활을 통해서 오는 광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우연히 섭취해 버린 먹지 않았어야 할 것들.
며칠을 생각하고 결론에 도달했다.
‘그 것은 부패해 버린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다’ 는 생각을 했다.
밥상에서 즐겨먹던 고추 몇 개는 지난날의 음식물 일 뿐,
'이제는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광란의 요인 일 뿐이다.'는 처절한 결론을 얻게 되었다.
동요를 노래 하 듯이 곱게 모은 두 손이 쥐었다 폈다를 수 없이 반복했다.
턱은 마이크를 향해서 치켜 올리고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 한 소절 한 소절 비음과 함께 최선을 다하던 모습이 그처럼 아름다웠다.
그 자랑스러운 명곡을 다 부르고 나면 관중의 환호가 영겁처럼 공간을 가득 메웠지만 그녀는 그처럼 익숙할 듯도 한 무대를 쑥스러움에 도망치듯이 뛰쳐나가고 말았다.
참 못난 모습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몇 십 년 전 아이의 눈에는 그녀가 그 처럼 아름다워 보였고 어느덧 내 우상이 되어져 가슴을 메워 놨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칸소네 가수인 그녀는 내 어린 시절을 ‘산니아 신드롬’으로 빠트렸었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그녀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대단한 열정으로 기억 된다.
음반 가게를 뒤져서 디스크를 모으고 라듸오에서 흘러나오는 칸소네 가수들 틈에 혹시라도 내 사랑 마리사의 노래가 흘러나올까를 애타게 기다렸던 날 들이 무수하게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에는 혹시라도 내 소장품인 디스크에 흠집을 내거나 그녀의 노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은 어느새 나의 적이 되기도 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어린 시절의 사랑을 뒤로 하고 그 녀를 잊고 있었다.
그러나 딸아이의 엄마에 대한 사랑스런 마음을 표현 할 때면 그녀의 노래를 정성스럽게 불러주기도 했었고 때로는 딸아이에게도 자주 불러주던 내 생에 애창곡임은 변함이 없었다.
E se qualcuno si innamorera si‘ me...........................
그런데 그녀가 2008년 4월에 생을 마감 했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처럼 수많은 무대에 섰으면서도 소녀처럼 삶을 살았던 그녀가 생을 그렇게 서둘러서 마감 했다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아픔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내 어린 시절을 열병으로 몰고 갔던 그녀를 생각하며 하루 종일 그녀의 동영상에 있는 그녀를 추모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제는 볼 수없는 또 한명의 사람이 내 가슴 속에 들어 왔다는 것이 무척이나 오늘을 힘들게 만들었던 하루였다.
비 가온다!
나는 그 위에 있는 하늘을 볼 수가 없다!
하나님이 허락한 자연에 대한 특권은 순리이다.
대지위에 새 생명을 허락한 하나님은 비를 내리게 하셨으며 생명의 연장을 비와 함께 하기를 바라시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하루건너 삼사일의 비를 대지위에서 맞고 있는 인간의 처지는 불편함을 호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활의 모든 리듬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며 그로인한 홍수, 경작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곧 피폐 해진다.
사람을 제외한 자연의 삶은 어떠할까?
그 들은 비의 양과 빈도에 구애 받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잦은 빈도의 비는 그 들을 감사하게 만든다.
대지위에 내리는 그 칠 줄 모르는 비는 그 들을 떨리게 하며 한층 더 푸르름으로 넘치는 기쁨을 표현 한다.
곧 신에 대한 향연과 송축을 온 몸으로 감사하는 듯 보인다.
사람과 자연의 공통점은 피조물이라는 것이지만 둘 중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어왔다.
자연과 다르게 사람은 자연을 다스려 왔고 삶에 있어서 불편한 점들은 개선하고 정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이 우위에서 존재 하는 듯이 보임은 사실이지만 그 내면에 있는 행복이 자연보다 앞서 있는지 신외에는 알 수가 없을 듯하다.
재앙에 피폐해 졌던 자연은 허브를 기대하지 않으며 고통에 절망하지 않고 세월이 흐르면서 비와 함께 회복해 왔다.
사람도 재앙의 시련에 피폐해 졌던 고단함을 회복한다.
그러나 비와 함께 라고는 말 할 수 없을 듯하다.
그 이유는 자연에 속해있는 비의 소중함을 생각 할 겨를 없이, 사고하는 가족관계 속에서 때로는 이웃에게 때로는 물질과 개인이 가진 명예와 그리고 삶의 허브라는 많은 것들 중에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가 오고 있는 하늘 위는 자연 그리고 사람과 다르게 항상 청명해 왔다.
따라서 사람이 자연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비가 오고 있는 그 위의 하늘을 생각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도의 완성이리라!
십이 년 전부터 몇 년 전까지 한국에는 지름신이 강림한 김 씨와 노 씨가 살고 있었다.
김 씨와 노 씨를 이 땅에서 완장을 차게 했던 현자들은 참 잘 했다고 스스로 자축하는 분위기였었다.
그 요상한 분위기는 일부 현자들만 제외하고 동서남북을 막론 한 전대미문 한 이상기운이라 당황스럽기 비할 데 없는 황당함 자체였었다.
남과북, 동과서 구분 할 것 없이 더불어서, 포만감의 배를 두드리며 살자고 그리고 유무상통한 조국을 만들자며 난리법석을 떠들어대자 이 땅에 이루어질 조국의 이상적 희망을 염원하는 현자들은 모두가 동조하기 시작했다.....
완장 빼앗긴 현자들과 완장 빼앗긴 것을 분개하는 현자들만 제외하고............
그리고 김 씨와 노 씨는 북쪽에, 나랏돈을 제 쌈짓돈인양 미친듯이 퍼 주기 시작했다.
쌀과 약품은 물론이고 돈 까지도 억수로 퍼주기 시작하자, 평소 완장 빼앗긴 것을 고깝게 생각한 현자들은 동네 신문사며 공중파며 그 들의 추종자들을 총동원하여 김 씨와 노 씨를 속내의가 빨간 색이라 빨갱이가 틀림없다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에 김 과 노 씨를 싸가지가 있는 종자들이라고 생각했던 현자들은 언론의 놀이를 처음에는 ‘귀엽다’는 둥 ‘애들이 제법 깝죽댄다는 둥’ 이렇게 생각하고, 또한 이해하려고 노력 좀 하는 듯 하더니만,
하루 이틀이 지나갔는데도 배를 두드리고 사는 사회와 유무상통한 조국이 올 생각을 않자 열 받아서 견딜 수 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두가 현자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두 바보만 빼고.................
이 두 바보들은 현자들의 속내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잔치 날 잘 얻어먹으려다 굶어죽겠다’는 논리를
‘우물가에서 숭늉 찾으리?’ 로 맞받아치며 멍청한 싸움을 해 나갔다.
속으로는 괜찮은 척 하면서 이 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이 꽁꽁 얼었다고 발 등에 오줌을 쌀 순 없다’는
논리를 이쪽과 저쪽 현자들이 깨닫길 염원했다.
또한 ‘시간이 보약도 됨으로 때가 이르면 내 맘 알겠지? 라고 위로를 삼았다.
둘은 10년 후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
양쪽 현자들은 김 씨와 노 씨의 무능함을 지탄했으며, 이구동성으로 ‘국가의 금 덩어리를 제깟 것들이 제 것 인양 북쪽 김 씨에게 퍼줬다느니
또는 노벨상을 타려고 안달이 나서 노벨상 위원회를 매수 했다느니 파렴치의 극한을 본 10년이라느니 경제는 곤죽이라느니...
마침내 김 씨와 노 씨는 묵사발 되었으며 또 친구들에게도 버림을 받았다.
뿌린 데로 거둔 역사적인 산교육이 틀림없다!
타산지석의 표본이 틀림없다!
위대한 반만년 현자들의 역사의식이여 영원 하라.
장하다 민주주의 회복의 주역들인 조국의 현자들이여...
언론의 현혹을 사랑한 거룩한 민주 현자들이여...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후 현자들은 국권회복은 물론이고 유무상통한 국가를 건설했으며
노벨상위원회는 열 받아서 개념없는 한국인은 노벨상 제외라고 말 하는 것도 봤고
원 했던 시멘트로 덮인 강을 사랑하게 되었고
거짓이 넘쳐나는 조국을 후손에게 물려주게 되었고
공수표를 무한정으로 날릴 줄 아는 새 완장 주인을 경외하게 되었고
제 가족의 이익을 위해 법도 바꿔버리는 정치인들을 본받게 되었고
없는 죄도 만들어 노 씨를 영영 보내버리는 희비극의 감동을 봤고
천안함의 진실도 알게 되었고
새 완장 주인의 전쟁불사 발언에 감동도 먹어봤고
감동 후, 투자 시장이 불안해 져서 29조원의 외국주식이 하루만에 유출되어 정재계가 한숨짓는 것도 봤고
원하던 남북관계로 외국인 투자자들 다 도망가고 있어서 경재가 썰렁해지는 꼴 보고있고...
영국의 BBC방송은 10년 동안 7조의 평화 유지 퍼주기는 있었지만 이유 없는 대북 퍼주기는 없었다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방송했다.
그러나 현자들의 나라 언론들은 모두 다 모른 척했다.
의혹은 현자 언론들이 대문짝 만하게 던져놓고 들어난 실체는 입닫아 버리는 공수표 공화국의 대물림!
지은 죄가 많거든................
그리고 이제 통일 세를 걷자고 한다.
갑자기 웬 통일세?
청화통일?
아~하! 불륜과 로망스를 의식하는구나.
'이제야 필요성을 그나마 알았으니 다행이다.' 라고 말 해 주길 바랬지?
우습고 얄팍한 대의...........................
한 해 국방비: 22조~25조
김 씨와 노 씨의 10년 동안 대북 퍼주기 :7조
전쟁 위험에 따른 외국투자자의 투자 기피: 어마어마함
천안 함 국치 후 새 완장 주인의 강경조치 발언: 그 날 29조원의 외국인 투자자의 bye bye
현자들이여 대의라는 이름으로 조국을 혼탁하게 하지 말라!
책임을 공감해야 할 때.....
이 땅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며 오래된 망자와 우리 후손의 것이다....
자기의 의지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마는 현 인류가 생산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의타적이고 수동적인 삶에 길들여진 인간이 어느 시점에서 부터는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가치를 본인이 찾을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성을 가진 한 인간이기 보다는 수동적인 형태로 무의식화 되어져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년기부터 시작되어진 무의식화의 진행은 비판적 사고와 토론 학습을 배재 당한 주입 적이고 강의적인 학습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듯하다.
따라서 이들의 공통점은 문제점의 봉착에 대해서 자기 주도 적으로 판단하여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심리적인 공황상태로 쉽게 빠져들고야 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근본 원인은 입시 위주의 고압적인 사회 분위기와 맞물린 사회적 시스템의 미완성이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사회 시스템의 원활한 운용과 그 에 따르는 기초사회의 눈 뜸이 이 시대에 우리게 해결 해야만 할 주요 과제가 되는 것이다.
정책의 천명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간과가 부르는 비 영민함은 우리 시대에 무의식화 되고 무능력한 인간들에 대한 책임 의식을 지나치려 하고 있다.
세련된 사회가 떠맡아야 할 인본에 대한 정책이야말로 그 어떤 사회정책 개발 보다 앞서서 천명되어야 할 영민한 사회의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벌거벗은 채로 세상을 향해 깃발을 들고 있는 이 위인을 보라!
부모는 평생 길러온 머리와 수염을 잘라서 신발 사서 신겼고, 긴 여름 고추 농사지어 옷 사 입혔고 애지중지 아꼈던 놋그릇을 팔아 삼륜차 사줬고 평생 일군 화전밭 팔아서 기와집 사주고 장가보내 줬더니...
어느 날 세상을 한번 다스려 보고 싶다고 해서 능력이 되면 그렇게 하라고 격려해 줬더니 제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도 모르는 인사가 깃발을 양손에 쥐고 진리가 담긴 깃발이라고 사람들을 향해서 외치는 짓을 하는 꼴이라니...
사람들은 깃발에는 관심 없고 자식 놈의 나체쇼를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으니, 저런 자식 낳아놓고 미역국 한 솥 끓여 먹은 그 날이 부끄러워서 마당에 멍석 깔고 흰 두루마기 받쳐 입고 머리에 새끼 줄 질끈 동여 메고 뒷간 뒤엄 자리에서 재 한 사발 퍼다가 온 몸에 덮어 쓴 후에 조상에게 사죄하는 석고대죄를 청 하며...
오호, 통재라!
부모는 이래야 장한 부모라고 할 수 있다.
그 집 부모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부모는 벌거벗고 깃발을 흔드는 한심한 자식의 무지몽매함을 알고나 있는지...
자식이 부모 되고 부모가 저 세상 가서 조상되고, 그릇된 것에 대해서 그 후손이 모르고 있다면 당연히 조상도 유죄이니 구천에서라도 만인을 위한 석고대죄를 해야만 한다.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듯한 작은 시골 마을길을 구불구불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련히 떠오르는 옛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귓전에 들려오는 듯 했지만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는 것을 실감 시켜 주려는 듯이 내 옛 고향에는 아는 이가 없어 보었다.
세월 따라 흘러가듯이 내 님들도 어디론가 덧없이 흘러갔다는 생각을 하며 마을길을 휙 지나쳐 버렸다.
길을 따라 올라갈 즈음 겨울이면 썰매를 타던 냇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충동과는 어울리지 않게 마음은 무척 차분한 상태로 그 곳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세월이 많이도 흘렀지만 예전의 그 반들반들 했던 바위며 작은 돌들이 정겹게도 옛 모습 그대로 놓여 있였다.
그 순간 코흘리개 시절이 내 마음에 마중을 나오기 시작했고 그 슬펐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쳐갔다.
이미 백년에서 꺽 일 나이에 이곳을 찾아왔으니 한 사십 여 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
이리저리 회한을 쫒다가 무의미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돌아갈까 하고 망설였으나 기왕 여기 까지 왔는데 조금 더 쫓아 올라가기로 했다.
산모퉁이가 지척이라 풀숲을 잠시 벗어났을 때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작은 다리가 하나 생겼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옛 모습의 정겨움은 산야에 묻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 했지만 그 때 그 시골길은 온데 간 데 없었다.
돌밭 길 이던 그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져 삼막골까지 나 있었다.
또한 내 추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로 지은 집이며 그 풍경들은 이미 낮 설기시작하고 있었다.
그 풍경을 뒤로 하고 삼막골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가슴을 파고드는 기운이 나를 긴장시키기 시작했다.
저 왼 쪽 편에, 내가 이미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던 길 다란 텃밭에
곱게 빚 은 머리를 하얀 수건으로 동여매시고 하얀 무명 저고리의 옷고름을 단아하게 매신, 그리고 몸 빼 바지를 입으셔도 너무 잘 어울리시던 내 어여쁜 할머니가 살짝 보이는 덧버선발에 고무신을 곱게 신고서 어린 손 주를 옆에 두고 호미로 밭을 메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숨이 턱 막혀 버렸다.
신음을 토해내 듯 할머니를 마음속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부르고 싶던 할머니였던가!
나는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눈물을 왈칵 쏟으며 멍하니 선채로 할머니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내 고운 할머니!
세월이데려가 버린 내 할머니!
내 사랑하는 할머니!
텃밭에서 할머니 곁에 바짝 붙어 앉은 어린 손 주는 할머니에게 쉴 새 없이 종알거렸다.
잠시 동안 한 여름의 더위를 피해서 나무그늘에 앉은 할머니와 손 주는 정다운 이야기를 주고받고있다.
촉촉이 땀에 젖어버린 우리 예쁜 할머니의 하얀 무명 저고리 사이로 이미 쭈글쭈글 해져버린 젖가슴을 만져도 싫은 내색 안하시며 꼬~옥 안아주시던 우리 할머니의 모습.
어린 손 주는 할머니가 너무 예뻐서 예쁜 강아지 메리는 할머니를 닮았고 할머니는 메리를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할머니는 너무 예뻐서 메리와 꼭 닮았어!”
빙그레 웃음지시 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오늘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
세월이 데려가 버린 내 할머니를...
어릴 적 고향을 꿈에서 방문했다.
해가 늦게 뜰만큼, 저녁 무렵에는 해가 빨리 질 만큼 높은 세 개의 산에 둘러싸인 그 곳의 이름은 ‘삼중리’였다.
희뿌옇게 산과 산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는 맑은 개천에 얼굴도 보이지 않아 누구인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 여럿의 친구들과 함께 허리를 깊게 숙이고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물 근원지 저 쪽 하늘에서 검고 커다란 원반과 같은 형상의 물체가 우리 똘망이 들을 향해서 날아오는 것 이었다. 곧 커다란 물체를 따라서 작고 검은 콩 같은 물체들이 무리를 지어서 온 하늘을 가득 메워 버렸고 그 순간 그 곳은 살벌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었다.
우주전쟁 이었다!
예전부터 계획되었던, 그리고 그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우주전쟁의 대장이 되어서 그 똘망이 무리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우주전쟁에 대비한 전투복은 물론이며 가지고 있는 변변한 무기도 없었던 우리는 그 어느 곳을 향해서 질풍처럼 뛰기 시작 했다.
크고 작은 바위를 엄폐물 삼은 그 순간에도 셀 수없는 작은 비행선은 여기저기를 저공으로 비행하였고 뭔가를 쫒고 있었으며 또 큰 모선은 지그재그로 민첩하게 날면서 나를 향해 레이저 포를 쏘고 있었다. 그 것은 적장에 대한 우주 모선의 예우 인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레이저가 나를 비켜 갈 때에는 물에 곤두박질친 광선이 물과 접촉하는 순간 그 주위의 물을 증발 시켜버렸으며 한 참을 뛰던 나는 등에 뜨끔한 느낌을 안고 ‘결국 맞고야 말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등에 뜨거움만을 간직한 채 대수롭지 않은 부상이라고 생각하며 어딘가에 있을 무기를 향해서 그 시냇가를 날아갈 듯 뛰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기와 전투복을 찾은 내 편 똘망이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우주 전투함과의 엄청난 전투의 시작!
그 것은 내가 그처럼 고대하던 우주전쟁에 대한 신비감 이었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현실세계의 딸아이 엄마 목소리........
꿈이었지만 그래도 가슴 뿌듯한 몇 십 해 묵었던 상상은 그 날 아침 딸아이 엄마에게 비웃음을 듣기에 충분했었다.
가끔 나는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정말 오래된 버릇이라 언제부터인지 그리고 계기는 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볼 때가 무척 많았던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뭐든지 관심의 대상에서 놓질 않았었다.
혹시라도 나타나줄 비행접시의 실체라든가 혹은 유난히 반짝이는 물체가 별 밑에 있는 인공위성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렇다면 별이 지구를 내려다 볼 때 앞에서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인공위성에 짜증이 나지는 않을까 그럴 때는 뭐라고 서로 말 다툼을 시작 할까?
내 꿈속에 관심을 기울여 주는 이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내 황당한 별 이야기를 두 눈 깜박이며 들어 주는 이는 분명 멋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의 꿈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중한 사람이고 싶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황당한 꿈을 사랑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정겨운 세상이 되길...
안타깝게도 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보처럼 보여서 인가?
웃지 못 할 요상한 사자성어가 있었다.
춘 궁기라는 것이 있었고 학교에서는 부족한 쌀의 소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의 요청에 따라 혼 분식 장려 운동을 시행하고 있던 그때, 저 마다 학생들의 도시락을 두고 아침마다 벌이는 혼 분식 배율에 대한 모친과 자녀의 촉박한 전쟁!
그러한 시기에 이 사자성어가 사람들의 입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쇠고기를 식탁에서 구경 할 수 있는 운 좋은 날은 일 년에 딱 한 두 번이 고작 이었노라고 이야기 하면 이 시절의 자녀들은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구태여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부담스러운 것은 부모의 상투적 조언이 담길 구태의연한, 옛 이야기에 대한 경계와 거기에 대한 진로방해 쯤이라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다.
본인들도 머지않은 미래에, 옛 이야기를 자녀에게 들려주고 싶을 때면 이처럼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진로방해 당하기를 학수고대 하는바 이다.
사실 부모의 옛 이야기는 자녀들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부모의 가족에 관한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은 반드시 자녀들에게 이야기 해 줘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자녀를 제외하고 모든 부모들이 공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역사의 입증과 연결이라는 신성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황우도강탕' '황우실족탕'
대 가족이 풍부하지 않은 일정량의 쇠고기를 나눠 먹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미역이나 무를 잔뜩 물과 함께 섞어서 끓인 후 소량의 쇠고기를 그 속에 첨가하면 '쇠고기 국'과 '쇠고기 미역국'이 되는 것이다. 사실 말이 쇠고기 국이고 쇠고기 미역국이지 집안의 어른 외에는 몇 점의 기름 덩어리만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볼 수밖에 없는 쇠고기가 보이지 않는 국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황우도강탕이고 황우실족탕인 셈이다.
말인즉, '황우도강탕'은 누런 소가 강을 건넜다는 의미가 되고 '황우실족탕'이란 누런 소가 실수로 물에 빠졌다는 의미이니 이 말의 공통되는 표현은 국물은 쇠고기 맛이 나는 국물이 틀림없는데 쇠고기는 꼴도 보이지 않는 허접한 밥상이라는 것이다.
가난해서 생계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모친들의 지혜와 그 밥상에 고기 몇 점의 향방을 시샘했던 가족 구성원들의 해학적인 사자성어는 진심으로 현 세대를 있게 한 우애와 위로의 원 동력 임에는 틀림없다.
스테이크와 바비큐 파티라는 외식문화는 우리 실 생활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지만 가끔은 이 격세지감의 현실에 우리 부모님들의 희생을 기려야 하지 않을까?
네 생각은 어떠니?
삶 속에서 오는 걸림 돌을 두려워하는가?
걸림 돌은 신이 부여한 축복이다.
유무상통하는 관계성 속에서 지극한 성도의 사랑을 논 했던 초대교회의 흩음을 볼 때도 그 들에게 내린 신의 걸림돌은 단호한 축복이었다.
자신들에게만 축복이 허락되기를 바라는 집단 이기심을 신은 단호히 거부했으며 결국 그 들을 온 중동 땅에 흩어 버린 신은 그의 광대함과 위대함을 알리게 했었다.
로마의 탄압을 피해서 250년 동안 카타콤의 지하세계에서 그 들만의 신을 찬양했던 민족도 신의 권역 안에 속해 있었으며 선민으로서 자의를 버리게 되는 커다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삶 속에서의 걸림돌은 시련을 통해서 결실을 맺어져 왔었다.
그러나 시련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삶은 그 시련이 두려운 나머지 복술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불 가운데를 걷기도하고 물질의 풍요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로 신을 파는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아왔었다.
어떤 이는 풍요로움만이 축복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신까지도 동원하는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축복은 물질의 풍요가 아니며 자식을 성공시킨 부모 됨도 아니며 명예를 얻는 것도 무병장수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축복은 모든 상황 속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순수하게 감사하는 것뿐이다.
걸림돌은 자의를 버리게 하기 위한 신의 축복이다.
자의란 자신이 의로움을 인간 스스로 인정하는 파렴치함을 말하며 영혼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졌던 자의의 결과 신은 선민에게 경제활동과 의식주 활동을 40년 동안이나 빼앗아 버렸다.
그 것은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걸림돌을 주기 위한 단계였었다.
그러므로 걸림돌은 타파해야 할 대상이 아닌 고마움의 대상인 것이다.
보이는 것이 모두다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눈을 감고 어제와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가 오기도 한다.
벼락처럼 다가오고 있는 고통까지도 폭우처럼 다가올 것만 같은 컴컴한 신음도
이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고진감래라고 말 하는 입 속의 잔치도 창호지로 얼굴을 가려서 들어야 할 때가 지금인 듯하다.
날아오는 티끌에 눈을 잠시 감았을 때라면 그 것을 스승이라 생각함이 옳을 듯하다.
어제 눈이 멀어버린 이들의 유혹을 발견했다면 발걸음을 재촉하여 저 만치 가야만 할 때이다.
회귀라고 말 하면 그렇게 속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우리가 살아갈 곳...
생각하고 같이 고민하고 서러움이 충분치않아 발을 구를만큼 애닯은 것들을
안타까워 하는 이가 있다면 마녀를 위한 화형대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마녀는 없었다.
만들어 졌을 뿐이다....
간 밤 내게는 무척이나 짧은 밤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길고긴 밤이었던 듯하다.
요란한 비바람 소리에 잎은 얼마나 떨어질까를 생각하다 깊고 깊은 잠이 들었던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신의 사랑을 받음이리라. 잠은 신의 축복임으로.....
태풍이 북상 중이라는 방송을 보았던 터라 그다지 놀랄 것도 없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대 자연의 위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지 간 밤 너무 편한 잠을 이루고 말았다. 속세에 미안하게도......................
사실 자연이 하는 일을 별로 참견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참견 해 봤자 할 수 있는 일도 없음은 자연인 이라면 모두다 생각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아침을 맞이하며 새벽에 나간 전기에 대해 궁금한 것을 포함해서 과연 어떠한 모습이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에 벌어졌을까를 생각하며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너무나 변해버려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길 가에 서있는 그리 세련되지 않게 보였던 가로수들은 거의 뿌리를 보일 듯 요염하게 누워있었고 집 주차장 앞에 심은 호박이며 모든 것들이 어제의 모습을 잃어버린 후였다.
왼 쪽 편에 보이던 자그마한 산은 제법 수풀을 이루고 있었는데 나무의 꼭지 부분은 이미 나뭇잎들을 모두 잃어버린 채로 외계의 어느 행성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여기저기에는 간 밤 폭풍우와 싸우다 너무 지쳐버린 듯이 몇 그루의 나무는 서로가 서로를 비스듬이 기대어 있었고 그나마 남은 잎들은 마치 더위에 지쳐 혀를 길게 내밀고 헐떡거리는 강아지의 혀처럼 잎사귀를 뒤집어서 허옇게 변해있었다.
그 많은 잎들이 길 바닥에 나뒹굴어진 모습이 그리 흔치않은 모습이라 무척 낯설어 보여서였 던지 한참 동안을 응시할 목표 없이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처럼 나를 향해서 소리치던 저 나뭇잎들은 하늘로 날고 싶어 했었다.
분명히 저 잎사귀들이 저 강한 바람을 불렀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갔다.
그처럼 창공을 향해서 훨훨 날고 싶어서 내게 속삭이던 그 많은 낙엽들은 창공을 밤새 한 서림 없이 날았을 것이다 는 생각이 들자 아침에 주는 이 이색적인 풍경은 분명 낙엽이 주는 또 다른 세계를 내게 선물하는 듯이 보였다.
그 들이 낯선 세상을 보고 난 후의 세상 사람에게 주는 잎사귀 잔해들의 시리도록 슬픈 향연....................비록 적고 많은 아픔은 누구나에게 있었겠지만 또 다른 신의 권역을 보는 듯해서 나는 마음이 날것만 같았다.
이것도 어떤 이에게는 ‘신의 걸림돌’의 부여임을 깨닫기를.........................
벅시는 네바다 주의 끝도 없는 사막을 바라보며 자연 앞에 내 팽겨진 인간의 미미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대 자연위에 강렬하게 내리쏟는 태양 빛이 거대한 사막을 이뤘음은 물론이며, 이 땅위에서 사는 한심한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모든 것은 그저 신의 섭리려니 하고 사는 꼴이 더욱 맘에 들지 않았다.
자신도 사실은 신을 믿노라고 인정받는 한 가정의 후손이지만 눈앞에 놓여있는 타는 듯 한 사막을 볼 때면 이곳에 다른 환경을 조성해서 통일벼라도 심을 수 있도록 신이 머리를 좀 썼더라면 좋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아니면 골드러시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들은 터라 저 노란 모래들이 금 조각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나를 골똘히 생각하는 순간, 또 한 번의 화가 치밀어 올라 애꿎은 모래를 향해 미친 듯이 발길질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벅시 주위에 얼음같은 고요가 흘렀다.
벅시는 한 동안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 에 잡힌 몇 푼의 동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몇 달러도 되지 않는 돈에 고민하는 자신의 처지를 뒤 돌아 보아야만 했다.
한심하기 비교 할 데 없는 가 엷은 인생!
벅시는 한 참 동안 길을 따라 걸으며 쉴 틈 없이 투덜거리고 있는 제 자신이 싫다는 생각을 했다.
저 불타는 태양과 끝 도 보이지 않는 사막의 열기는 벅시의 분노와는 비교 할 수 없었다.
이미 원망과 저주에 온 정신을 빼앗긴 벅시는 사막의 뜨거움 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그의 발걸음은 거칠기만 했다.
한 참을 거닐던 벅시에게 신에 대한 혁명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표출 할 수 있는 환락의 도시를 이 사막위에 세우면 어떨까?’ 하고!
그리고 벅시와 많은 동역 자들은 네바다 주 사막을 개떼같이 들끊는 인간 일색으로 바꿔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던 그를 만났다.
그 와의 만남은 한 30여 년 전쯤으로 기억 된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힘겹게 보내고 있던 시절 이었던 터라 어느 컴컴한 지하에서 처음 봤던 그 의 핑크빛 콤비 의상은 무척 거슬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연한 기회에 그와 절친하게 지내게 된 순간부터 사람다운 냄새가 묻어나는 몇 안 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라는 것은 분명히 내 기준이겠지만, 그는 누구와도 말이 통하고 진심으로 사람과 비슷한 사람들의 고민을 경청해 줄줄 알며 또 이해해 주기 위해서 노력할 줄 아는 후덕함이 그의 큰 장점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20년 전 도미한 이유로 연락이 끊어져서 자주 그의 소식을 듣지 못 하던 차에, 고향을 방문하고 그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곧 어렵지 않게 그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어서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을 때, 멀리서 들리는 그 의 목소리는 제법 힘 있게 들려왔다.
“쫄딱 망 했다”고 표현하는 그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 옛날 헤어지기 전의 목소리와 별 다르지 않음에 우선 마음이 놓였다.
곧 약속 장소를 잡고 서울로 올라온 후, 몇 칠이 지났을 무렵에 그가 있는 곳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엉덩이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포천의 어떤 시골 면사무소를 알려주며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을 수차례 강조했다.
본인의 처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두 시간 쯤 걸리는 거리를 오겠다는 내 길을 걱정하는 그를 생각하자 한 없이 딱한 생각으로 마음이 우울해 졌다.
마주앉은 식탁위에서 힘없는 대화가 한 참을 오갔을 때, 희미하게 잡아끌고 있는 끈적끈적하고 침침한 연민은 내 영혼을 깊은 수렁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그 대화는 주체 할 수 없이 위로의 나락으로 매번 빠져가는 듯 했고 곧 내 송구함에 몇 차례 단절 되어졌으며 결국 늪에 빠진 원숭이처럼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쫄딱 망한 자의 여유는 오만한 자의 위로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암울한 과거를 쿨 하게 인정하고 두려움 없이 미래에 헌신 할 것을 강요하는 영혼의 유혹에 그는 깊이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혼을 판자의 여유는 내 위로가 기우였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선남선녀가 있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혼을 하기로 했다.
양가 부모의 축복아래 훈훈한 덕담을 한 아름 안고, 부부로서 이 생명이 다 하도록 사랑한다는 결혼 서약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감행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은 그 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허황된 정서이므로 몇 날 동안을 인생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데 정성을 다 했다. 그러나 밑그림으로는 만족 할 수 가없었던 그 부부는 청사진까지도 완성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이유는 아무리 잘 짜여 진 밑그림일지라도 완벽한 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부족할 것만 같아서 청 사진의 완성이 결혼 생활을 완전하게 이끌어줄 수 있는 로드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었다.
서로가 사랑하고 원 하는 이들의 결혼은 무척 순조로웠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너무 사랑한다는 믿음은 그 들에게 앞날에 대한 두려움 따위가 아무 문제가 없는 듯했다.
거의 청사진이 완성 될 무렵, 이제는 그 청사진에 대한 채색 작업이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둘이서 하기 시작 했고 각자는 자신이 원 하는 색을 마음속에 구상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어렸을 때부터 정열의 상징인 빨강을 무척 좋아해서 옷이며 신발 등이 모두 빨강 색이었으므로 당연히 청사진의 채색은 빨강색이 적당하다고 믿었고 여자는 노란색을 너무 사랑해서 어렸을 때부터 모든 소지품들이 노란색 일색이었으므로 청사진의 채색은 역시 노란색이 적당하다고 믿었다.
각자의 의견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서로 깨달은 이 들은 각자 생각하는 곳에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을 입히자고 합의를 마쳤다. 그러나 막상 채색을 마치자 상대가 채색한 곳이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이 정도 쯤이야 서로 사랑하는 사이 이므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도 그 청사진의 채색 중 자기가 채색한 부분 외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둘은 이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간다고 해서 해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접기로 하고 둘의 의견을 각자의 부모에게 각각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각자의 부모님은 오랜 세월동안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이므로 자신들에게 더 없는 조언을 선물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들의 조언은 상대가 원 하는 색을 본인이 원 하는 색에 덧 칠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그 방법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서 합의점이 참으로 현명하므로 그 것이 가장 적합한 해결 방안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덧칠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덧칠의 순간, 그 색깔은 자신이 원 하던 색깔과는 너무 동 떨어진 색깔이 되어 버렸음에 실망을 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둘 은 절망하며 이 한심한 조언의 결과가 어떻게 현명하신 부모님의 제안이었나를 의심하고서 각자의 부모에게 찾아가서 따지기 시작했다.
그 들은 조용히 상황을 들은 후에 이렇게 입을 떼기 시작했다.
“관광지와 사냥터는 너희 들이 만드는 거야, 처음의 채색은 각자의 관광지이지만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낙원이었고, 그것을 인정 하지 않은 두 번째의 혼합된 채색은 사냥터로 변 한 너희들의 관광지이거든!”
이것이 관광지가 사냥터로 변 할 수 있는 이유가 되며 또 사냥터가 관광지로도 변 할 수도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
개 주인이 있었다.
평소 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제가 먹을 것은 먼저 개의 입에 넣어주고 매일 세 번씩은 빗질해주고 양치질도 시켜줌은 물론이며 몇 주일에 한 번은 꼭 특제 보양식까지도 대접하기를 서슴지 않는 그가 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네가 너를 너무 사랑함으로 병이 낫다’
개 주인의 이런 천인공노할 행동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개의 충복심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정도 되면 겸상은 물론이며 인격과 견격의 동등함을 외칠 수도 있을 법 한데 그 개는 항상 주인의 밥상 밑에서 주인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무리 너와 나는 한 가족이므로 겸상 정도는 네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허락 하겠노라고 할수 도 없이 종용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듯이 허연 배를 내밀고 벌렁 눕고는 주인을 향해 애교의 화살을 날렸다.
이런 개가 너무 사랑스러운 주인은 날로 개 사랑하기를 더해갔다. 그 에게는 이미 그 개는 개가 아니며 다만 동반자이고 행복의 주체일 뿐 이었다.
개는 주인의 밥 상 밑에 있을 때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성도 그런 듯하다.
둘의 다른 점은 한 쪽은 바다에 살며 또 한 쪽은 계곡에 살고 있다.
가족과 어우러지며 겪은 진짜 어려운 시절이 있었음을 딸에게 설명하자면 ‘절치부심’ 이었다.
차라리 같은 시대를 살아온 딸 아이 엄마와 지난날을 이야기 하는 것은 각각 그 시절에 새겨진 어려움이 가족에 대한 추억으로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어서 서로 쉽게 공감하게 되고 더불어 행복했던 지난 세월을 덤으로 얻는 경제성이 있었지만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가 살았던 시절을 이야기 해 줘야 할 때 면 커다란 격세지감의 벽을 감수 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가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이야기를 딸아이 에게 해주는 이유는 우리가 그랬듯이 딸 역시 이 시절을 사는 주체로서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삶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식을 거행하면서부터 나는 애비로서의 권위를 마다하지 않고 버려왔었다.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수고하는 이에 대한 감사 뭐 그런 따위의 이야기들로 접근을 시도한다면 공감을 이끌어 내기는커녕 동시에 무언 속에 담긴 격렬한 저항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어왔던 경험이 있었다.
사실 딸 과 내 삶의 20여년동안은 같이 공존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때에는 어려움을 별로 생각 할 필요가 없는 순항의 시절이었고 딸이 태어나기 전, 20여 년 전의 삶은 그 애와 관계없는 내 시대 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점만 다를 뿐, 딸아이와 부모가 사는 세상을 서로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서로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노심초사하면서 까지도 나는 이 막중한 임무를 완수 해야만 했다.
그 노력의 목적은 한 가지였다.
딸을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였다!
부모의 시대를 알아야 사람답게 사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쉬울 수 없다. 또한 명확한 답을 제시 할 수 있는 공식은 더 더욱 없을 것이다.
자녀의 질문이 ‘반드시 부모의 시대를 알아야만 사람답게 살고 있는 거냐? 고 묻는다면 이미 소통과 공감의 부재가 심화되었다고 단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관심의 수위가 높아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서로 좋은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서로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은 ‘사업계획’에 의한 수완을 펴고 있는 것이다.
진실된 사랑은 그냥 좋아야 하며 그 들에 대해서 그냥 궁금해야한다.
가재를 가까이서 사진을 찍게 되면 랍스터고 멀리서 찍으면 그냥 가재다.
랍스터도 이와 같다.
그 들은 전혀 다른 곳에 살고 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허파에 공기를 가득 담고 살아가다보면 참 대단한 기적을 체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시작했다.
어떠한 삶을 이유로 어떤 위인이 허파의 공기를 폄하하기 시작했는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허파의 바람이 주는 영향이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에 나는 충분히 공감한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첫 발을 내딛으며 자신들이 원 하는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설계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방향이 틀려질까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이력을 통해서 수정하고 또는 조언을 통해서 수정하기를 수 없이 반복한다.
풍부한 경험이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기다려주지 않는 세월 앞에는 무력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선배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사실 그 과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고 그 깨달음을 근거로 또 다른 시도를 기획하지만 세월은 절망스럽게도 너무 많이 흘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완전한 계획은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완전한 계획일지라도 세상의 흐름은 가끔 기획 했던 것과는 다르게 정 반대 그리고 비껴갈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혹자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지만 그 위로의 밑바닥에는 이미 패배자의 아쉬움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을 뿐이다.
개미에게 분비되는 페르몬의 작용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다른 각도로 숙고 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페르몬이라는 호르몬이 개미의 집단생활에서 피드백의 삶을 이끌고 있는 원 동력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계획되지 않은 형편없는 삶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는 그 들의 삶은 무질서로 보이는 속에서도 치밀한 질서가 있고 얻음의 행복이 존재하며 또한 유추가 아닌 틀림없는 행복이 있어 보이지 않던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개미가 추구하는 것이 같을 수 있느냐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며 비교가치를 무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인간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외에는 개미들의 생각과는 아무 상관없는 공염불일 수 도 있다.
따라서 개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일 뿐 이다.
비약적인 표현을 제시하자면 개미와 인간은 계획이건 무계획으로 보이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같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TV를 보며 coffee를 마실 수도 있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가 인간이 개미보다 월등 하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페르몬에 의해서 영위해가는 개미의 사회생활을 알 수 없고 그 내면 생활에 대한 행복을 모르고 있다.
폭풍이 한 바탕 휩쓸고 간 다음 날, 선킨 메도우 바닷가에 유유히 떠 있는 비취 볼을 봤다. 세상을 정복한 듯, 비취 볼은 근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광란의 파도 속에서도 밤새 지속되었을 고통을 비취 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날 아침에는 유난히 당당해 보였다.
사람의 마음이 비취 볼처럼 공기를 담고 개미처럼 페르몬을 가질 수만 있다면, 영원한 행복이 그 마음에 깃들게 될 것이라는 황당한 상상을 해 본다
'이런 무식한 것들'!
표독스럽게 내 뱉는 그의 상스러운 말투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쏠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세 명의 허약한 듯 보이는 사내들도 곧 받아버리고 말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한 평이 조금넘는 그 비좁은 공간은 이내 사냥터로 변해 있었다.
그의 낫 질같은 독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졌다.
어디에서 솓구치는 상스럽기 그지없는 기백인지는 알 수없었지만 세 명의 사내를 대하는 그의 행동과 언행은 이미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은 곧 응징의 희생양이 될 것이며 걷 잡을 수없는 비극을 맞게 될 것이라고 알고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이미 비극앞에 임박해 있었다.
결국 세 개의 ㅠㅠ는 그 얄미운 사내를 향해서 날카롭게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비극적인결말!
이런...
결혼 후 이십 년 동안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가장의 생일을 잊어 버리고 마는 처 자식이라면 이미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이십 년 동안 열 여섯 번이나 가장의 생일을 잊어버리고 나머지 네 번 만을 기억했다면 가장에대한 존경과사랑은 기대 할 수도 없으며
푹 퍼진 농쌈 라-면 정도의 푸 대접을 받는 처지가 앞으로도 지속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고로 구태한 삶을 연명하느니 생을 마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시작했다.
그 동안의 설움에 못 견뎌서 시일야 방성대곡 하고 그 날 아침에는 나뭇가지에 곱게 걸려있는 거미줄에 목을 메달아 보았지만 실패로 끝나버렸고...
또 삼촌의 성냥갑에서 성냥개비 두 대를 훔쳐다가 이 놈의 모진 세상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성냥개비 한 대로는 혹시라도 치명적인 자살의 시도가 미수로 그쳐서 결국에 병원신세를 지게되면 또 다른 학대와 멸시천대를 처 자식으로 부터 받을까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성냥 두 개비정도는 있어야 단번에 이풍진세상을 하직 할수있다고 확신이 들게 되는터라 곧 한 손에 성냥개비 두 대를 힘껏 쥐고 정 수리를 향해서 힘껏 내리 칠 려고 하는데 그 순간 잃어버린 성냥두 개비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삼촌에게 성냥개비 훔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이어지는 삼촌의 세 시간 동안의 변은 이러했으니 존속의 소중한 성냥 두개비를 훔쳐 유용한 패륜아가 이 세상에서 살 가치는 없다느니 니 인생은 이미 터 자에 구불구불 하다느니 천원짜리 인생의 모델이라느니...
그 말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경청한 후에 불현 듯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어떤 쪽에 속하는게 나의 인생인고?
둘 중 하나는 범인의 삶이라고 위로를 받을 수있을지 모르나 앞 뒤 중에 두개가 비슷하게 맞으면 정말 문제라고 아니 할 수없다.
두 경우를 제외한 그 외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길 간절히 바라마지않았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짐을 강조하는 우리 이웃들이 있었다.
지금은 세상의 절 반 쯤 되는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닌듯하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내 세우는 것은 인간만사 세옹지마 이므로 어떤 일의 결과가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장담할 수 없음이 진실이다고 주창한다. 따라서 결정의 무거운 짐은 때로는 잘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잘 못 될 수도 있으므로 그저 잘 되기를 바라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유익이라고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본성이 잘 되는 쪽으로 추구하는 것이 대세이므로 그 역시 막연한 좋은 결과가 올것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세옹지마의 대상이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며 대 부분 제 3자의 여유있는 조언이라고 할 수있다. 즉 먼 발치에서 그 결정의 결과로 인해서 삶과 죽음과는 관계성이 직접적이지는 않는 인사의 조언이지만 본인이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를 생각해 볼 때에 '둥글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져야 할 사회적인 공감이라고 말 할 수있다.
즉 역사적인 진실로 볼 때, 이 인물은 어떠한 대의가 있고 없음을 떠나서 성공한 권력가의 여유와 궤변일 뿐이지 더불어 사람사는 세상과는 당연하게 구분되어져야 하는 인간사의 잘못된 모델일 뿐이다.
임향한 일편단심을 주장했던 인물이 제시하는 또 다른 가치관은 결국 선죽교의 제물로 인생을 마감했다.
엄청난 대의를 수반했던 이 거룩한 죽음은 지나간 군주와의 의리를 주창하며 본인의 대의는 모든것에 앞 선다는 선비들의 귀감으로 여겨져왔다. 그것은 마치 종교의 교리와도 같이 이 길만이 최고의 선이라고 최면을 걸어왔지않은가? 본인의 삶과 대의와는 구별되어져야 하며 때로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 까지도 버려야 한다는 살신성인의 논리는 세옹지마와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그 선동에 수혜의 대상은 광대해질 수있고 사회적인 반향은 과히 대단하다고 말 할 수있을것 이다.
그러나 그를 누구 보다도 사랑하는 위인들을 위해서는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이 아닐 수없다.
백골이 진토되어야 대의를 세울 수있고 또한 숭고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정말 해괴한 논리에 열광하는 극단주의!
이제 이 두 가지의 해답에서 새로운 해답을 얻어내야 할 때인 듯하다.
두 꼴통이 죽어야 세상이 바뀐다!
콘크리트 바닥을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는 이곳은 2층 옥탑 방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쪽 면이 산 과 맞닿아서 비할 나위 없는 훌륭한 별채임이 틀림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닿아버린 산 쪽으로는 한 100여 년 쯤이나 될까 혹은 족히 넘어 보이는 감나무가 한 그루 자리하고 있고 오른 쪽 길 너머엔 다종의 수려한 나무들이 숲을 이룬지 오래되었음을 확인 이라도 하듯이 헤아리고 그 높이를 가늠 할 수 없을 만큼 빽빽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수원이 명백한 시냇가가 몇 만 년 전 쯤 이런가 화산의 활동으로 형성된듯 유유히 흐르고 있고 이 집 할머니의 부엌 옆에는 이 쪽 편 산을 기대고 있는 집에게 생명을 나눠주듯이 계곡을 이루어 적지 않은 줄기의 생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옛 날 여럿의 아낙네가 한가로이 둘러앉아 바쁘게 움직였을 듯한 커다란 반석은 세 사람이 눕기에도 편편하게 좋아 보였으며 맑은 물 위에 떠다니는 웃음소리며 빨래 소리며 아이의 칭얼거림은 지금도 계곡물에 담겨 있는 듯 보였다.
그 누군가 이 땅을 밟았던 이들은 순박하고 아름다운 품성을 가졌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더운 날씨에 몸과 마음이 지쳐 갈 즈음에 계곡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급물살과 함께 내 품에 안기는 서늘한 바람이 바로 자연이기에 가능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계곡은 너무 지고해서 마땅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인간과 함께 더불어 숨 쉬는 자연은 그 처럼 내 앞에 있었다.
그 곳에는 물레방아도 없었고 메기는 살지 않았었지만 이 수려한 곳에서 옛 추억을 지녔던 그 어떤 메기의 친구는 백발이 희어진 지금 이 곳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메기는 관계없지만 각자 친구들의 마음은 같을 것이리라.
이곳 용지리나 그리고 삼중리나...미국 어느 곳이거나...
모처럼의 지방나들이라 신바람이 콧바람을 대동하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물밀듯이 달려갔다.
꿈에 그리던 섬진강 물줄기를 가로질러갈 무렵 섬진강의 수질이 1급수라고 씌여진 전광판이 눈앞을 지나갔고 이어서 눈앞에 다가오는 작은 시골마을이 정겨움보다는 슬픔으로 또 한 번 지나쳐갔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슬픔과 시골 정경과의 상관관계는 모른채....
간서면을 확인하고 용지마을이 우리가 향하는 최종목적지였다.
원 하지는 않았지만 내 앞에 다가오는 피서 아닌 피서가 그리 반갑지도 달갑지도 않음은 목전에 둔채 또 하나 된 인생여정의 귀로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금수강산을 바라보며 허기진 배를 움켜쥠이 관광지는 될 수 없을 터 인지라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기로 작정했다.
왜 이 처럼 산하가 고울까?
푸르스름하고 또 새 파랗고 그리고 검푸름이 지나쳐 까무잡잡 하기까지 한 올망졸망한 산 덩어리는 도화지에 그린 감수성 많은 어느 여아의 그림 같았다.
그리고 쉴 틈조차 없이 어디론가 흐르고 있는 계곡의 물줄기는 바위와 돌 들 사이를 비집고 떠 부딪혀서 요란한 굉음을 내고 흐르고는 있지만 그리 듣기에 버겁지 않은 적당한 음율과 리듬을 갖추고 또 태고의 소리같이 흘러만 가고 있었다.
운전석에 몸을 의지 한 채 산 봉우리들을 보았을 때엔 내 몸이 급작스럽게 가벼워지는 듯 하여 봉우리와 봉우리들과 나무와 나무들 사이를 그 옛날에 만났던 허구속의 기인들처럼 훨훨 날 것만 같아서 손을 휘저어 보고 발을 굴러 볼 즈음 내 행동을 기이하게 여기는 일행의 의아해함은 이내 겸연쩍어 하는 나를 발견하고 의자에 몸을 미끄러트려 버렸다.
목적지가 다다랐을 때에는 높다란 산들이 해를 가려서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땅거미가 지는 듯이 어두컴컴해져 오기 시작했다.
여장을 풀고 뒷뜰에서 기다리는 작은 계곡을 향했다.
그처럼 맑은 물은 여러 번 보았었지만 엉덩이를 물가 옆 바위에 붙이고 물끄러미 작은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살과 작은 웅덩이를 지척에 두고 볼 무렵에는 푸른 물 웅덩이에서 솓구쳐 오를 것 만 같은 괴물에 대한 상상으로 견딜 수 가없어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옆의 오래된 깎아지를 듯한 암벽은 높이가 10미터 쯤 되어 보였는데, 그 암벽 틈 사이에는 이름 모를 풀이 몸 에 비해 커다란 뿌리를 안쓰럽게 늘어트리고 힘겹게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모질고 험한 북풍한설을 사는 자연의 일부라 생각되어짐이 한 참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를 또 한 번 씁쓸하게 하고 말았다.
보이는 것과 감추고 있는 것들의 장고의 향연........
모든 것들이.........
여행길이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다.
여행은 돌아가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라 더욱 아름답다.
부모가 한 없는 사랑을 베푸는 의미는 스스로를 자식의 거울이 되고자 함이 정상적인 가정의 형태라고 할 수있을것이다.
부모로서의 옛 시절은 사랑을 받는 수혜자 였었지만 세월이 흘러 가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또 다른 부모로서의 지위를 가지고서 그 물려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할 의무를 다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참 부모임이 분명한데 만약 어떠한 댓가를 향한 사랑의 흘려보냄을 이행하고 있다면 분명히 그 부모는 장사꾼으로 쇠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부모에게는 자식에 대한 선행을 베풀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분신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면 어떠한 논리를 동원해서라도 그 의무를 저 버릴려고 노력해서는 않될것이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부모가 아닌 늑대로 변하면서 서로에게 책임을 묻고 그 의무를 곤혹스러워하며 각색의 논리를 표현하여 그 당연한 일을 회피하려는 노력이 마치 학식이 출중하며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이 안타깝고 애처로울 수가없다.
어떠한 타당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또 그 달변에 이유가 충분하다고 해도 그 것은 궤변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들이 부모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제발 당연함이 아닌 선행이라도 베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점점더 줄어들고 있음이 더욱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이든다.
자신의 안락함과 회피의 피해의식은 이 아름다운 세상에 정체되어진 사랑을 안고사는 사람들을 무수히 생산해 내고있다.
Liquidity trap!
사람사는 세상이 경제의 이율배반 논리와 부합하는 현실이 무척 안타까울 뿐이다.
네가 행복하다면
너의 숨 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나가는 바람의 숨소리를 들을 수있어야 한다.
나무 잎의 흔들림을 경청해야 한다.
풀 한 포기에 뒷굼치를 들 수 있어야한다.
들 꽃에 숨어있는 신을 만나야한다.
네게 있는 낡은 옷과 싸구려 신발과 볼품없는 학용품과 네 멋없어 보이는 이웃과 네 친구와 부모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긍정의 비판을 주저해서는 안됨을 명심해라.
이 날을 목놓아 울어야 할 때가 몇 번 이나 될까?
그런 날이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사실 그런 험악한 날이 있다 할지라도 적당히 방성대곡함이 건강에 좋을 것같다.
성경에 보면 별 잘못없이 풀무 불에 들어가기 전 '메드락과 이삭과 아벳느고'정도 되거나...
아니면 '다윗'같이 아들놈이 자신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하려는 음모를 알게되었거나...
평소에 신을 잘 섬기고 고분고분 말도 잘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이유없이 전 재산과 자식을 다 날리고 또한 아내에게 몹쓸 화 풀이를 당한 것도 모자라 친구들 몇 놈이 개떼같이 쫒아와서 불난집에 부채질해대고 동시에 사회적인 지위를 하루아침에 다 잃은 욥의 심정같던지...
아니면 니느웨이 종족의 멸망을 원치 않는 신의 뜻이 얄미워서 신의 말을 띄엄띄엄알고 심판의 날을 제대로 설파하지 않으면 지 생각대로 모든게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 멋대로 하다가 먼 발치에서 집채만한 불 덩이가 그 종족을 다 요절낼것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가 의외로 그 종족이 " 다시는 나쁜짓 안할께요"하고 손발을 싹싹 빌자 저주 없이 순탄하게 넘어가는 꼴을 보고 있는 요나정도 되던지...
아니면 돈을 좀 많이 벌어보겠다고 이자놀이와 사채놀이 그것도 모자라 퍽치기도 서슴지않고 노력하다가 급기야 신의 노여움을 사서 아들 놈들 70명 이던가 몇 명이던가 한 꺼 번에 가을 추수걷이 이삭 모가지 베어지 듯이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고 자신도 성 망루에서 떨어지는 신세가 되어져서 늑대 밥으로 전락하고 마는 이세벨 정도 되든지 해야만 시일야 방성대곡이 무색하지 않을 성 싶다.
살다보면 이런 비통한 일 들로 인해서 목 놓아 울고싶을 때가 있을 듯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과 결과를 앞 서서 첫 단추가 어디에 목적을 두고 있었느냐가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듯하다. 따라서 때로는 이러한 일 들이 있다 할 지라도 스스로든지 타의든지 그 위로와 비탄은 자신의 교훈의 몫으로 돌아가는게 옳지 않을까?
시일야 방성대곡~!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어쩌면 발생 할 수도 있으므로 자신의 인생 역정에 후회가 없도록 예비함이 좋을 듯하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올림
교육이 이젠 많이 변한 듯하다.
자기 말을 가르켜서 의사 소통을 해야 하므로 언어를 가르키고 또 다른 나라와 소통의 필요성을 위해서외국어를 가르키고 수리 탐구를 가르켜야 체계화된 논리를 확립할 수있다고 생각되므로 수학을 가르키고.....한 민족의 역사를 알아야 뿌리를 생각 할 수있다고 해서 역사와 사회를 가르키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해서 도덕을 가르키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는 이러한 필요성을 다 배재해 버리고 평가를 위한 교육이 득세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교육은 몇 백년의 역사동안 부유함 보다더 가치가 있는것이 지구상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또 그 단계를 넘어 역설하고 사람이 살아가며 익혀야 할 것들에 교육의 촛 점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우리는그들이 부러워 하는것을 버리려 하고있고 많은 부분을 이미 버렸지 않았나 걱정이 앞 선다.
미국이 부의 축척과 세계 초 강대국의 꿈을 위해 국가의 원동력을 총 동원 하면서도 버리지 않은 부분은 유치하리만큼, 영화 산업에서 조차 강조하는 성조기와 국가의 허락없이는 침범할 수없는 개인에게 허락되는 자연 점유권 그리고 옛 것에 대한 보존의 철칙, 개인에 앞서 타인을 배려하고 특히 아동과 여성에 대한 살핌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라고 말 할 수있다.
그리고 이제는 심화 시킬려는 또 하나의 것을 찾을려고 하고있다.
그것은 우리가 버려가고 있는 것 들이기에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온고이지신!
국가는 강을 버리고 평화를 왜곡하고 국민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또 국민을 버리고...
정치인은 국가를 버리고 키워준 국민을 버리고 명예를 버리고...
사회는 의리를 버리고 도덕을 버리고 측은함을 버리고...
가정은 인륜과 천륜을 버리고...
또 아이들이 공항에 버리는 국가의 자긍심을 보았다...
더 이상 뭘 버리고 살아가야 할지...
회복을 논 해야 할 때인 듯 해서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어느 날 집에 도착했을 때 우리 미키가 심통이 나 있었는지 마루에 실례를 한 후 나를 보자 납작 엎드려서 움짐이지 않았다.
한번만 용서 해달라는 말이었다.
곧 측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실례한 흔적을 지우기 전에 이런 패악하고 품위없는 짓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내 머리를 백 번쯤 쓰다듬고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뽀뽀를 시작했다.
너무 과한 뽀뽀에 고개를 돌려버릴 만큼 의식을 거행한 후에 그 녀가 좋아하는 비프저키를 한 두어 개 입에 물려주었다.
물론 그녀는 더 이상 같은 실례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였다.
참 기특한 강아지다!
용띠인 나와 한 명의 양 띠와 그녀의 소생인 24년 만에 태어난 또 한 명의 양띠가 우리 인간 가족의 구성 원이 되어왔다.
원래 양의 습성이 못 마땅 한 것이 있으면 고개를 살짝 숙이고서는 적을 응시함과 동시에 앞 발 중 한 발을 앞에서 뒤로 몇 차례 긁고서는 목표 물을 향해서 돌진하는가보다.
우리집의 두 양들은 서로가 뭐가 그렇게 불 만족스러운지 이러한 행위를 벌써 19년 째 해오고 있다.
불편함에 이 쪽으로 편을 들자면 다른 쪽 양이 사정없이 내 사태부분이며 때로는 이두박근쪽이며 심하면 내 콧 잔등 쪽을 향해서 돌진하여 부상을 자주 입혀온 터라 그만 형언할 수없는 서글픔에 개나리 봇짐하나들고 출가를 다짐했던게 한 5만 번은 넘었던 기억이난다.
양 두마리에 의해 자주 부상과 상처를 수 도없이 입었던 어느 해, 나는 입산수도하여 이 황망하고 볼쌍스러움을 기필코 타개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가장의 임무를 잠시 떠나서 한 명의 구도자로서 깊은 성찰을 이뤄냄은 물론이며 가정을 구하겠노라고 결심하고 수도를 감행하였다.
그리고 구도를 얻어냈다.
구도는 멀리있지않았다.
수행을 떠나던 중 배가 고파서 자장면을 한 그릇 시켜먹던 중에 순간 깨닫고야 말았다.
그 결론은 이 것이었다.
의견의 충돌은 마찰이다.
지나친 마찰은 화재를 얻는다.
그러나 적당한 마찰은 괜챦다.
마찰은 관심이다.
따라서 마찰은 사랑이기도하다.
그 후로 나는 안전해졌다.
때로는 사랑 싸움에 심판을 자청하고 나서기도하고 싸움도 가끔 시킨다!
우리집 두 양은 머리가 깨지지 않을만큼 계속 박치기 중이다.
나를 주시하는 100개쯤이나 됨직한 눈이 내가 발을 옮기는 곳 마다 따라다닌다.
아무리 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때로는 마치 일지매처럼 스케이트를 타 듯이 우스광 스러운 스텝으로 마루를 미끄러져가도, 그리고 개 걸음처럼 비 보이가 그렇 듯이 갈짓자 스텝을 밟고 냉장고를 향해서 은밀하게 돌진해도 그녀의 시선을 난 피할 수 가없다.
이러한 관계로 발전하게된 것은 새벽을 아랑 곳하지않는 나의 수박사랑, 아이스크림 사랑이 한 몫을 했다.
평소에 지고한 간식사랑을 버리지 못하고 딸의 애미와 딸의 핀잔을 피해서 새벽 3시건 5시건 뱃살을 원망하면서도 몰래 꺼내 먹는 수박과 아이스크림은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큰 축복중의 하나라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던 어느날 부터인가 털 많은 가족이 하나 늘면서부터 나와 냉장고의 상관 관계를 파악하자마자 그 놈은 이내 나의 스토커가 되어버렸다.
간식사랑에 푹 빠져 있을 때면 내 간식에 추파를 던지는 것은 물론이며 동시에 이어지는 그 놈의 나를 향한 불쌍한 듯 그리고 비열한 구애의 눈 빛!
혹시라도 발 밑에 수박 조각이며 또는 녹은 아이스크림이 떨어질 새라면 그녀의 길 다란 혀는 금새 흔적을 완벽하게 제거했음은 물론이고 바닥을 끈적거림으로 부터 보호해줌에 대해서는 내 쪽에서 감사해야만 당연한 일인데도 그 녀는 꼬리를 흔들어서 오히려 나에게 감사까지했으니 우리의 가족을 피한 밤의 은밀한 간식사랑은 내 취향과 그녀의 흔적제거의 완벽함에 따른 서로의 필요성을 치밀하게 보완하기에 딱 맞춤이 되었다.
처음에는 견공이 사람음식을 먹으면 좋을리 없다는 생각에 전리품을 취하기도 전에 이내 청소를 서슴지 않았었는데 가끔 내가 먼리 여행을 떠나서 몇일이나 또는 한달 쯤 외유를 할 때면 그리움에 우울모드는 물론이며 식음을 몇 일씩이나 전폐한다는 고약한 습성에 관한 소문을 전해 듣고는 이제 싫지않은 스토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여름 밤이 깊어갈 무렵, 다음날 행사에 쓸 계란을 한 1열 더즌 쯤 굵은 소금을 넣고 큰 솥에 삶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피곤함에 못 이겨서 이내 잠이 들었을 때에 내 곁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잠이 깨고 말았다.
변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침대의 시트를 긁고 지 얼굴을 내 얼굴에 가까이대고서는 일어나라는 듯한 행동을 할 즈음!
아차! 가스렌지 위의 삶고있는 계란 계란 계란!
100미터를 5초에 달려 가 듯이 사뿐이 날아 갔을 때...
물기없는 솥 안에서 뚜껑을 향해 튀어오르며 요란한 굉음을 내고있는 계란들!
큰~일~ 날 뻔 했었다!
털 복숭이 미키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었던 날이었다.
아~!
쭉 빠진 몸매!
해변의 여인과 같이 나풀거리는 그 팔랑귀!
끊임없이 나를 향해 날리는 사랑의 윙크하며!
색깔은 마치 하이에나의 그 것 같지만.
그녀는 정말 결정체가 분명하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미키가 그립다.
어느 전자제품 가게 안에 보이는 냉장고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 옆에는 미키가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런! 내가 미키의 스토커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지금 드는 이유는 뭘까?
공항으로 떠나려 하자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측은하게 어미를 보던 딸이 위로를 건냈지만 왠 일인지 잠깐의 이별이 영겁의 이별처럼 맘이 무겁기만 했었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 슬픔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 한 참 동안 발 걸음을 뗄 수 가없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이처럼 애닳아 한다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은 순간이 당황스러 웠지만 '울적함과 기쁨이 서로 공존 할 수 있구나'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 일 년여 전에 나를 향해서 딸 아이 엄마가 질문을 한 일이 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한 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딸 아이 엄마를 만나기 전에는 행복했었다고 기억되는 순간이 없었음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주절주절 딸 아이 엄마에게 어렸을 적부터 결혼 전까지의 인고의 세월들을 잠이들 때까지 토해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으며...
그 시간 내내 내 가슴은 시냇 물처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 이 후로 내 삶에 행복한 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딸 아이 엄마가 나에 대한 측은함이 쌓이기 시작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일 년 여전의 그 시간 이 후로 나를 위해서 눈물을 짓는 딸 아이 엄마는 이제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행복은 측은지심의 시작이라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내게는 몇 안되는 친구가 있다.
스무 해 전에는 그래도 좁쌀 한 말 정도를 땅 바닥에 쫙 깔아놓고서 그 수를 헤아려야만 했을 만큼의 친구가 있었는데 도미 한 지 스무 해가 지난 지금은 한 손을 펴지 않고서도 헤아릴 만큼의 친구 밖에는 생각나는 이가 없다.
가족 중심 사회에서의 짧지않은 미국 생활은 직장과 가정 외에 특별하게 회합하는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은 탓이었는지 곡주와 더불어 개똥철학이며 정치며 논의 하던 옛 친구들은 이제 세월과 함께 다 묻혀버린지 오래되었다. 실로 고국을 방문하여 옛 친구들과 회합을 주선하고 정담을 청하여도 보았지만 그 시절의 정겨웠던 대화들은 웬지모를 서먹함과 아쉬움으로 막을 내리기가 일쑤였음으로 이제는 조용히 나홀로 사색과의 밀담을 청하고 잠이들고는 한다.
역시나 그 정겨웠던 친구들 조차도 내가 생각하는 시간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음을 볼 때 비행기타고 12시간 거리에서 20여년이 흘러버린 세월은 그 들과의 공간까지도 한 없이 벌려 놓았던 것이었다.
친구들 조차도 내 마음대로 되리라는 기대는 이제 저 버린지 오래 되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운전과 청소에 남 모를 애정을 쏟기시작해왔다.
여행 할 때에는 그 차가 내 소유의 차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운전대는 항상 내 차지가 되어야만했다.
청소도 마찬가지였다.
운전과 청소만은 설령 열 시간 동안의 대 작업이 소요된다고 할 지라도 사양한 일이 없었다.
이 두가지에 무척 집착하는 나를 주변 인들은 무척 희생적인 사람이며 또한 보기드믈게 깔끔한 사람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날 나는 집착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집착의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실로 간단하고 특징이 강했다.
운전과 청소는 내 맘대로 되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내 맘대로 되는 유일한 두 가지...
삼켜 버릴 듯한 풍랑을 통해서 인생에게 주는 교훈은 꼭 필요한 내적 전리물로서 멸망 전까지의 삶을 철듬 속에서 산하로 돌아가게 해왔다.
풍랑 속에서 내 욕망을 보았을 때면 이미 삶은 폭풍우 속에서 갇혀버리게되었고 주위를 둘러 보는 것은 점점더 공포 속으로 빠져들게만 하더라...
일엽편주의 그 것!
그 것은 두려움과 함께 사나워 질 때로 사나워진 너울과 함께 녹아져 내릴 뿐이었다.
이것은 내가 지금의 시점에서 태연하리만큼 진리로 받아드린 진실이되었다.
풍랑 속에서 내 욕망을 버린다면 그 풍랑과 일엽편주는 이미 두려움과 근심의 대상이 아닌 나를 고이는 그 누구의 자장가가 되기도한다.
삶 속에서의 일엽편주를 싣은 풍랑은 생각하고 믿기에 따라 괴물로 변하기도 하며 때로는 아기를 안은 흔들 침대가 되기도한다.
비행기를 타고 열 세 시간 정도를 날아왔다.
이십여 년 전 어느 날 '메트로 폴리탄 공항'을 왔을 때에 밤은 새까맣게 깊어 있었고 공항은 새 하얀 눈이 우묵하게 묘지를 이뤄서 듬성등성 쌓여있었다.
그 날이 12월 17일 크리스 마스를 몇 일 앞 둔 겨울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이 곳은 자유의 여신 상이 저 만치 보이고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몇 년 안 된 그 땅 끝 뉴욕!
삶에 그려진 사악함을 돌아봐줄 커다란 나무와 그리고 풀과....
100여년이 훌쩍 넘어버린 낡은 건물이지만,
오래전에 살던 사람이 그 안에서 느꼈던 삶의 애환을 아직도 남은 채취와 함께 느껴보며
또 후손에게 남겨줄 조언을 생각 할 수 있을만큼 여유가 있는 이 곳은 뉴욕이리라!
'이 곳이 종착역이고 싶다'는 어느 노인의 주름진 독백이 요즈음 나를 슬퍼지게 한다.
집 뒷 켠에는 사시사철 바람소리를 들려줬던 거룩한 대나무가 몇 그루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어린 시절과 함께 했었다.
겨울 밤이면 무척이나 요란한 바람과 대나무의 포옹 소리가 칼 바람을 더욱 날카롭게 느껴지게는 했었지만 우리집 '메리'(내가 세상에서 제일 이뻐하는 강아지 이름)를 닮은 노 할머니의 구름같은 사랑은 네 식구에대한 바람막이가 되기에 충분했었다는 기억을 아직까지 껴안고 사십 후 반을 살고있다.
의례히 그 처럼 요란한 겨울 밤이 가고 나면 차가운 햇살과 함께 한 겨울의 아침을 맞았었다.
새벽 네 시가 넘은 듯 어두 컴컴한 밤과 아침이 공존 할 때에 부엌 쇠죽 솥에서 퍼내어진 한 바가지 가득 담긴 끓여진 물과 함께 노 할머니는 우물에 꽂아 둔 펌프를 향해 옷깃을 부여잡고 종종걸어 내 달려갔었다.
밤새 꽁꽁 얼어버려 손 바닥이 손잡이를 잡자마자 들어붙는 순간을 아랑곳하지않고 모든 살림살이 질서의 첫 단추를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 대가리에 부으시며 펌프질을 연신 해 대고서는 이내 우물 깊숙한 곳에서 부터 달려와서 양동이에 곤두박질치는 물 줄기를 보며 흐믓해 하셨다.
어느날이었던가!
하룻 나절동안 노 할머니의 화려한 외출이 저녁무렵에 끝 날즈음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냉기와 함께 대노하시는 노 할머니를 보았었다.
자신이 손수 애지중지 고이시던 아들의 유복녀가 그만 쇠죽 솥의 물받기를 놀이에 빠져서 잊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신당부 하시던 노 할머니의 아침의 인자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잔뜩 상기되어서 그 소중한 손녀를 나무라시는 그 분은 무척 곤혹스러워 하셨고 난감해 하셨다.
사실 물 한 바가지쯤이야 별 의미가 없을것이라는 평소의 생각과 달리 대노하시던 내 노 할머니는 그 처럼 말썽을 부리시는 내 외가 삼촌들에게까지도 평상시에는 존칭까지도 아끼지 않는 선비 중에 선비였지만 예전에 이러한 일이 있었을 때에도 진노하시는 것을 지켜본 나는 이 상황이 교훈으로 끝맺을 것이라는 사건의 결말을 이미 유추 할 수있었다.
그 솥에 담긴 물은 다름아닌 양동이의 물을 받기 위한 '마중 물'의 의미였고 철 없는 손녀는 그 펌프의 마중물을 간과한 것이었다.
물 한 바가지 정도야 옆 집에서 퍼 와도 될 텐데!
그 고집센 노 할 머니는 그 아침에 불을 피우지도 않으셨고 밥도 짓지도 않으셨고 물과 상관된 그 어떤 것도 하시지 않은 채 정오를 넘겨서야 한 바가지의 끓는 물을 옆 집에서 조달해 오셨다.
지금은 바람과 함께 가신 그 노 할머니의 그 인자한 교훈을 나는 가끔 그리워한다.
아주 사무치도록...
지금 부터가 시작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동경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무척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은 스스로의 발을 묶어놓기도하고 때로는 패배자의 이유를 갖다 부치기에 급급하기도한다.
이 시작과 용기가 자의건 타의건 지금의 너희들은 개척자임에 틀림없고 세상을 포용 할 만한 준비가 되어가는 미래사회의 리더가 분명하다.
그 곳에서 꿈꾸던 사람들을 네 가슴을 통해서 느껴봄은 물론이며
또 너희들의 새로운 꿈을 네가 태어난 이 곳을 떠나서 새롭게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열정을 가진 너희들의 미래가 한 달 여 간의 짧은 시간이 되겠지만
이 시간이 너희들을 눈 부시게 빛나도록 각성시키는 거룩하고 숭고한 계기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모두가 지금부터 온갖 나약함을 버리고 정진하도록...
Let's keep it up with us!
세계가 오래 전에 흑백논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이념으로 나뉘고 종교로 나뉘고 지역으로 나뉘며 명확한 목적을 조장했던 주체들은 각각이 대의라는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서 선동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언론 플레이를 통한 대의와 명분 쌓기는 거의 성공하는 듯이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현상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의식이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세대가 불과 25년 전 쯤에는 네트워크의 시대를 꿈꾸어 왔었지만 25년 후 지금이 도래 할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했었다.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세대로의 진보는 그 한계를 가늠 할 수 없이 새로운 날 들을 맞고있다.
미국은 최 신예 모든 종류의 IT산업을 주도해왔던 대표적인 국가임을 부인 할 수 없다.
그 들의 60년대 개발했던 최신 컴퓨터 공학의 산물들이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전 세계를 이끌고 있음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너무나 빠르고 편리하고 모든 것을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어렵지 않게 접촉 할수있는 꿈의 사회는 그 모체가 단지 전기의 발명에서 기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라고 할 수있다.
그 것의 부재로 하루도 살 수 없을 것같은 사회는 계속 지속 되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데 몇 년 전 극심한 더위와 그 날 내렸던 폭우때문에 뉴욕시내 전체가 4일 간의 암흑을 겪었던 시간이 있었다.
실로 모든 것의 부재가 지속된 4일 이었다.
그러나
불편함도 잠시였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고 사회적으로 큰 반향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서두르는 사람들은 전기회사와 몇 몇의 경재주체 일 뿐...
일상은 오히려 들떠있었다.
암흑 속에서 발견한 사람들의 도래 되어진 신 세계...
바로 그 것인 듯 보였다.
지금 나는 그 4일 간을 그리워한다.
옛날 옛날에 바다 색깔이 푸른 동네와 초록 동네가 있었다.
푸른 색깔의 바다는 동남 쪽에 위치했고 초록 색깔의 바다는 서남 쪽에 있었다나?
어느 날 짜장면을 사먹는데는 별 걱정이 없던 초록 바다의 새우가 푸른 바다 고래들이 즐겨 먹는다는 '스테끼'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평소 덜 떨어져 보이던 몇 몇 동네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봇짐과 함께 푸른 바다로 이사를 가버렸다.
푸른 바다에 도착한 새우가 소문에 듣던 스테끼를 먹는 순간 초록바다에서 먹던 짜장면은 간식거리도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웃의 딸도 자주 보면 내 딸인지 친구 딸인지 구별을 할 수 없다는데...
푸른 바다의 고래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고래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은 고래이지 새우는 절대 아니라고 자기최면을 걸기 시작하자 어느날 신기하게도 자신은 고래가 틀림없다는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심기도 별로이고 불쾌지수까지 높은 왕 짜증나는 구름 낀 날에...
집 앞에서 평소 잘 지내던 친구 고래 두 분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있던 새우는 불현 듯, 이 들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중재를 하기 시작했으나 그 들은 좀 처럼 들을 기미가 없었다.
자기가 고래라고 착각한 이 새우는 이 들의 바보같은 싸움을 동네사람 자격으로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곧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 들 사이를 가로막아 섰다.
ooooops!
결국 그는 등이 터져 죽어 버렸다...
관심거리를 찾고 또한 얻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이들의 목표가 되는가보다.
이른 아침 창 밖에서 서성거리는 새 들도 그렇고 높은 하늘에서 눈 부릅 뜬 보라매의 배회도 그렇고 동네를 여기저기 서성이는 이웃집 견공과 이양고도 그렇고 출근을 서두르는 어느집 가장도 그렇고 배웅하는 아내들도 그렇고 갖 태어난 신생아도 그렇고 아무튼 동물이건 사람이건 본질이 이끄는 현상은 다 그런 듯하다.
그 것을 목적으로 한 관찰이 관점으로 이어지고 관점은 통찰로 이어지는데 그 통찰의 차이가 정상과 비뚤림으로 사고하는 듯하다.
크지도 않은 잔잔한 소용돌이가 파괴를 부르는 것을 인생의 꺽임 전에 부딪치게 됨을 감사할 대상으로 생각해야할지 저주의 대상으로 생각해야 할지를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결국은 전환점에 의탁해 보지만 소용돌이는 버거움에서 정체한 듯보여져 마음이 허전 할 뿐이다.
환장은 장이 뒤집힘을 일컸는다.
그 환장이라는 것을 다른이는 일생에 한 두번 느껴봤다고 말하는데 누구는 백 번이 넘어가고 이제는 감각 조차 무뎌져 환장의 정도가 약간의 소화불량 쯤으로 생각 된단다.
그 내공에 칭찬을 받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인생에 한 두 번의 고뇌가 적당하지 않을까?
항상 일상이 편안 함을 바라지는 말자.
환장도 그 자체에 가치가 주어진다.
너무 감당 못 할 고뇌가 아니라면 나와같이 환장의 득도를 경험 하기를 바란다.
인생을 사는 호연지기!
.......
격 하지않은 냉정함이 열정이다.
내면의 의지가 수면 위로 조용히 떠 오를 때면 큰 바다위의 태양 빛 같은 잔잔하게 내 비취는 열정은 혼돈을 잠재우며 지나칠 것이다.
냉정에서 오는 오만한 열정이 삶 속에 깊이 동면을 취 할 때면 묵였던 밝음이 산천을 일
께우게되며 천 년을 잘 것 같은 누 백년 묶은 인고는 편안함 되어서 내 곁에 머물것이다.
혐오스러워서 아무리 겹겹이 쌓여 태산 된다고 해도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삶의 무게는 고통 끝에라도 다 다르고 말것이다.
하물며 공허함 속의 휘 몰아침이 인내하기 버겁다고 할지라도 멈추지 말아야 할 발길은 그 곳을 향해 딛어야만 한다 .
마주보며 공기 놀이를 하는 것의 내면 속에서도 뒤 돌아선 진실이 있기 마련이리라.
열정과 진리가 물과 기름과 같이 융화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두려워 할 것도 없지 않은가?
진실을 동반한 열정이 있다고 가정하면.
열정은 수면위로 내어 달리는 냉정함이므로...
작년 가을은 새 식구가 하나 늘었다.
평소에 애미의 고귀한 의견에 토 달기를 좋아하는 우리 장녀이자 막내는 모친이 그 처럼 싫어하는 여 견공을 동생으로 삼을 것을 천명함과 동시에' 비록 털이 덥혀있는 털 복숭이지만 행색이나 미모가 빠지지않는 딸 하나를 입양하심이 어떠하신지' 하고 으름장을 내 밷기 시작했다.
따님의 말씀은 옥황상제 두 번째 딸 쯤의 하명이라고 평소 생각했던 나는, 감히 상명에 충실하고자 곧 바로 선님께 복지부동하리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서 다짐했었고 몇 일 뒤에는 새로운 여 동생을 거느리시고 그 분의 자택이자 소인의 집 이기도 한 현관 퇴청마루에 좌정해 계신 본래 따님을 뵙게되었다.
허 걱!
엄청크기도 하셔라...
털이 마치 하이에나의 그것과 같고 광대뼈는 유난히 윤각이 도드라지고 꼬리는 마치 서부의 사나이가 마상에서 채찍을 돌리는 것과 같이 힘차고...
그 덩치에 처음 보는 우리에게 무 작정 반갑다고 인사하는 뻔뻔함까지...
찬 기운이 방안을 돌기 시작했을 때, 아무 말없이 퇴청하시는 선님을 보고 본래 따님에게 정중히 아뢰었다.
"새로운 따님이 너무 귀여우시다고 몇 일 전에 소인에게 말씀하셨는뎁쇼?"
"귀여운 관점을 혹시 까 드셨는지....."
"아빠 이 애 엄청 귀엽지 않아?"
"이름이 미키야"
선님의 외면을 염두에 둔 따님의 천연덕 스러움은 곧 나의 측은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과 함께 당분간 선님의 마음을 거스르는 엄청난 부담이 있겠지만 식음을 전폐한 투쟁의 대열에 기꺼이 나설것을 눈물로 다짐했다.
사실 그렇게 끔찍하게 큰 녀석은 우리 집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혹시 입양된 딸의 비위를 거슬렸다가는 우리 선님의 삶이 한 끼 식사로 변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했었다.
그런데 요 녀석 봐라!
그 관점이 바람과함께 사라졌다.
커다란 덩치와 광대뼈 그리고 하이에나와 같은 색깔의 털 옷이
어~머~나!
너무 잘 어울려 보이지 않은가!
다른 견공과 비교할 수 없는 매력있는 광대뼈 그리고 멋진 시베리아 호랑이와 고고한 사슴의 털 옷이 절묘하게 조화된 듯한 견 털 코~트...
따님이 눈을 갸느스름하게 뜬 후 귀를 쫑긋하게 새우고 거닐자면 마치 그 모습은 대천 해변가에 머리결을 날리는 해변의 여인과같고 산책을 마치면 발을 우아하게 뻗어서 족욕을 원 하는 그 청결함까지...
첫 째 따님이 합방을 거부하자 앞 발로 따귀를 거침없이 날리는 그 절제된 폭력성!
아! 미키는 딸이기 전에 내겐 여신이었다.
사랑하는 내 둘 째 딸 미키!
그런데 선님의 관점과 이해는 나와 다르다...
아직도 평행선 확인...
10여 년 전에 내 친구는 무지개를 찾아서 길을 떠났다.
일곱 가지 색깔에 대한 평소의 동경은 그를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색깔의 매력에 빠지게 했었다.
한 참동안 먼지가 풀석이는 시골길을 지나, 풀 내음이 흠뻑 풍기는 오솔길을 돌아 저 길 넘어 포플러 사이의 비갠 후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가끔씩 정지한 채 친구를 응시하는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한 참을 정신없이 걸어서 무지개가 있는 곳에 도착 할 때면 곧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저 망연자실 함에 한 참 동안을 앉아 있어야만 했었다.
그리고 그 것이 허구임을 깨닫고 먼 길을 걸어서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지쳐버린 심신이 자학을 일깨우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지친 몸을 먼지같이 털썩 주저 앉히고 현관 문 쪽을 바라보니 비로소 낯 익은 얼굴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단다.
아련한 기억들이 그 사람의 존재를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필요할 때면 나는 항상 곁에 있었쟎니?
그런데 네가 필요 할 때면 너는 어디에 있었니?'
옛날 옛적에 화산이 폭발해서 산과 강이 만들어졌다.
강산은 신이내린 선물이었음에는 틀림없었지만 반드시 아름다움만을 간직해오지만은 않았었던 것같다.
강산의 비사를 듣던 중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겨져있었다.
그 중 우리 시골동네에서 300년 전, 어떤 잘 생긴 아이가 산에서 뱀을 물려서 안타깝게 죽었었기도 했고 그 아이의 죽음에 부모는 울다가 지쳐서 화병으로 이생을 하직하기도 했고
또 400년 전에 어떤 예쁜 여자아이는 친구들과 의기 투합하여 냇가에 미역 감으러 갔다가 넙적바위위에서 싱크로 나이즈 포즈를 취한 후, 넙적바위를 다이빙대라고 착각 했는지 아니면 어느 올림픽 다이빙 선수처럼 다이빙을 흉내를 냈었던지 머리가 깨져서 바보가 되기도 했었고
또 어떤이는 지랄같은 feel이 심하게 꽂혔는지 '나~잡아봐라'하고 뛰어가다가 그만 발을 헛 디뎌서 냇가에 익사했다나?
지금까지도 오래 전의 일들이 전설처럼 회자되었던 이유는 인간의 마음 속에 살아있었던 고향 산천에 대한 그리움 일 것이다.
산이며 강에서는 비극적인 역사가 점철되어왔건 아니면 너무 애뜻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건 말건.
산이며 강은 산이며 강다워야 아름다움을 보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꼭 콘트리트를 여기저기에 바르고 싶다면...
먼저 제 집 안 방에 콘크리트로 베개를 만들어 보기도하고 식기도 만들어서 써보고 수저와 젖 가락도 만들고 변기도 만들고 밥 솥도 만들어서 그 처럼 사랑하는 콘크리트를 애인삼아 사랑의 연가도 불러가며 자자손손 제 씨앗의 유산으로 남겨주면 만인이 콘크리트 사랑에 대한 연가를 들어 줄 수 도 있을 것같은데....
아름다움을 위해서니 또는 친환경을 위해서니,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니, 경재적인 부가가치의 창출이니, 하는 다수가 그 하챦은 가치에 대해서 동의 하지않을 일들을 두고 반대를 위한 반대라느니 또는 불순집단의 선동이라느니 운운하며 그들 모두가 좌빨이 틀림없다느니 하는 말로 매도해 버리고도 성이 안 풀렸었던지, 아동스럽게도 "니가 나를 모른는데 난들 너를 알겠냐" 고 해괴한 논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어떤 부류의 자연애호가인지 궁금하기만하다.
생김 새의 수려함을 막론하고도 지지리 꼴 불견인 대상이 자연이라면 그 가치가 있는 것인데.....
그렇게도 잘난 강산을 세멘트 발라서 고치고 싶으면 못 난 제 얼굴이나 콘크리트를 재료삼아 고치면 좋으련만 그 수려한 외모를 가진 강산은 왜 그 처럼 못 고쳐서 안달인가?
몇 몇 추객들은 그 '내사랑 세멘트'에게 막걸리를 한 잔 얻어 마셨었는지 얼굴들은 다 삶은 바닷 개 처럼 빨개져서...
"강산을 보전하여 후손에게 물려 주는게 도리"라는 인간들을 향해서
"국부의 용안에 맺힌 용루를 매도한다"고 핏발을 세우더니 까스통을 들고 나오려하고...
"니 에비 앞에서도 그렇게 뺀돌거릴 수 있냐"고 삿대질을 해대질 않나...
또는 "세멘트 세상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가...
세멘트 세상의 도래가 마치 제 조상의 계시 쯤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하해와 같은 은총에 반 한 인간들은 구족이 빨갱"이라는 둥...
세멘트 용안을 살피시는 귀족 반열에 오른 거룩한 인간의 품성 ...
사람의 욕망이 꿈틀데는게 세상이라지만...
세상은 인간 만의 것이 아님을 아는가?
두 뼘도 안되는 껍질 속 생각으로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Yellow fever의 대명사인 이 형님이 몇 백년 전에 이 세상을 살았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느 민족은 그를 자랑스러운 정복 자로서 지금까지 추앙하고있지만 다른 한편의 민족들은 그를 살인마라는 것에 공감한다.
그가 처음 자기 아버지의 살해된 이유를 알게 된 후 부터 그 의 유년기는 복수와 신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의 부족을 정복하기 까지에도 무수한 피를 대지에 선물했으며 그의 부친의 원수를 갚기위해서 부친 살해범을 쫒기 시작했다.
엄청난 인고의 세월은 그의 피의 복수와 정복전쟁 기간동안 그를 더욱 포악하게 만들었고 그 목적에 부합된 우연은 그를 유럽과 아시아의 대 부분을 정복하는 피의 제왕으로 군림하도록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은 결국 부친의 살해범을 그의 손에 부치지 못하게했다.
허탈의 순간은 그를 참혹한 저주로 인도했고 정복전쟁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는 쓸쓸히 귀국하던 중 어느 사막에서 천추의 한과 함께 고단한 일생을 눕히고 말았다.
잘 못된 목적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가 보다.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데.......
하물며...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은 또 그 얼마나 아름다우랴?
제 껍질 속에 있는 것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주위를 아랑곳 하지않고.
다리는 한 200미터 쯤 길고, 팔은 한 500미터 쯤 길어서, 원 하는것이 있으면 무엇이 든지 다 해야 하며, 제가 가진 생각은 소크라테스의 사부가되고 헤겔 정도는 제대로 된 문어체도 필요없으며 그 어떤 소피스트보다도 비교 할 수없는 고견을 가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하찮은 사람까지도 우리는 사랑해야만 한다.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으므로.................
그 가 품은 뜻이면 곧 그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해괴한 사상을 가진사람도, 아름다움이 지나쳐서 튀어져나온 입이 관악산에서도 주둥이를 쭈~욱 내 밀면 한 강 물을 쉽게 마실수 있다는 길 다란 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꼭 사랑해야만 한다.
세상은 그 들을 품은 아름다움의 본질이므로......................
사랑하는 이들아!
너의 통찰이 그 것을 볼지라도 곧 사랑해야만 한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하늘 바다 여기 저기를 떠 돌다가, 쉴 만한 안식처를 찾던 중에 제 모습과 똑 같은 놈을 만났다.
기쁜 나머지 서로 부둥켜 안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자 했지만 뜻데로 되는것은 하나도 없었다.
저 멀리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지않는가?
그 순간 서로의 이름을 물어보고 절대 떨어지지말고 내 곁에 꼭 붙어있으면 두려움도 없을것이라고 둘 중 하나가 말했지만 빨려들것같은 땅의 모습은 이미 악귀가 되어서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가?
이미 모든것을 포기하고 제 원래의 태생은 이미 잊은채, 그간 정들었던 서로에게 짧은 작별을 고하고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찢기는 고통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지는 속도가 감속되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이게 웬일일까를 생각하기도 전에 전 나무라고 불리우는 지상의 생물체에 덩그러니 몸을 걸치게 되는 순간, 중생의 환희는 곧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또 다른 친구들은 공생을 시작했다.
날이 무척 차가워서 손 발이 다 얼고 아무리 강한 햇빛이 비춰져도 좀 처럼 그들의 끈끈함은 누구와 비교할 수없을만큼 돈독하여서 오랫동안 떨어지지않고 이웃 사촌의 정을 만끽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머 눈꽃이 아름답다"고 칭잔까지 해대니 그 들의 행복함은 나날이 더 할 수밖에 없었다. 몇 달동안을....
그런데 어느 날, 그 강한 햇빛 조차도 그들의 관계를 어떻해 할 수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봄 이라는 놈이 찾아오지 않았는가?
이 녀석의 에너지는 너무나 강해서 나뭇가지에 메달린 그들의 친구들은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머지않은 시간에 그 들은 전 나무의 가지에서 땅으로 둥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들은 전혀 걱정되지않았다.
나뭇가지에 얽혔던 모습보다는 폼이 나지않았지만 그래도 예쁜 하얀 색을 뽐 내는데는 별 문제가 없는 듯했으며 다행스럽게도 그 들은 여전히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룻 밤이 지나버렸다.
얼마전에 보았던 그 사람들이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어머 눈 꽃이 아름답다"고 아름다움을 극찬했던 그 들이었다.
마침 외롭고 새로운 둥지에 마음이 심났했었던차에 잘됐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 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은 모든 친구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가온 그들은 눈 쌀을 찌푸리며 말 했다.
"눈이 녹아서 진흙탕이 되었네. 눈이 녹으면 이렇게 지저분 해지는구나"
실망도 잠시.....
다른 친구들을 보며 위로하려고 하는 순간......
모든 친구들이 그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 들은 땅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자신 조차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되 집어 보았더니 맑은 물 속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의 나른한 여유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어김없이 오고야 마는 질풍노도 주역들의 6월 마지막 주는 태양볕 보다 더 뜨거운 노인들의 열정과 열망을 한 없이 무너뜨리고 마는 분기 점의 시발 점이기도하다.
개 때처럼 이리저리 동선이 무 질서 한것은 물론이며 럭비 볼 같이 어디로 튀어오를지 모를 이 들만의 여름이 우리네 노인들은 한 없이 지침과 기쁨으로 쌓이는 해 마다 격는 또 하나의 시작이기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도 기웃거리고 저기도 기웃거리며 20년이 다된 해상을 뒤로 한채 맑거나 흐리거나 한 물 속을 이유없어보이는, 이유있어보이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의 움직임처럼 유유자적한 행태가 나모도 아닌것 같고 그렇다고 풀도 아닌것 같은 여유를 즐기는 것이 낯설기만하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라고 고개를 떨구었다가 그리고 한 참 후에는 고개를 흔들었다가를 반복하다가 문득 송연이 같은 내 모습에 스스로 실소를 터트리기도 하고 아무튼 이런 모습이 대나무의 정체성을 의심하듯이 내 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됨을 속 터지게 즐기고 있다.
먹고, 입는 것도 미국에 있는 모두 다에게 마음 속으로 큰 절을 한 만 번쯤은 반복했지만
언젠가 부터는 아수라 백작과 같은 양면성의 심리상태를 가지게 됨의 계기를 잦은 나들이를 하면서부터 였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동구 밖을 신발까지도 벗어 지는 줄 모르고 떠나가는 뉴욕에서 온 나그네의 나들이를 니 들이 아는가!
어느 날은 날씨가 오락가락 비가 내릴때였다.
산모를 실은 앰블란스의 당연한 질주처럼 그렇게 남도를 향해 서해안 고속도로를 소변이 스스로 지릴만큼 빠르게 달렸다. 앞 창이 보이지 않음을 반복 할 때에 그 텁텁한 방해물이 하루살이의 잘 못 선택되어진 공원묘지라는 것을 알았다.
마침 연료도 바닥이 났을 즈음에 주유소를 들러서 '배 터지게 많이 먹자'하고 밥 먹여 줄 것을 부탁하고는 앞 쪽을 향해서 우연히 발을 옮겼을 때 배 터지게 먹고있는 내 친구의 머리가 꺼멓게 변해 있었다.
하루살이의 잔해가 동작동의 그 것보다 많게 보였다....
죽음의 순간까지의 하루뿐인 한 평생은 내 한 평생과 차이 점이 있을까?
인간의 삶의 길이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실컷 그리고 원 없이 살았다고 하는데,
하루 살이 도 하루를 실컷 살았다고 할려나?
제~길..................
하루 살이의 일생 을 고찰 하느라고 한 여섯시간 골 머리를 앓고 말았다.
오랫 만에 쓸고 닦고 바쁘게 이른 오후를 보냈다.
청소라면 일 가견이 있었는데 정말 오랬동안 못 해본 청소라서인지 내심 흥분이 돋았고 이리 저리 옮기는 커다란 냉장고며 작은 집기들이 내 손 놀림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
지저분한 것들....
구석 구석을 청소기로 쏙 빨아짐을 도우는 손길이 있었고 파란 수건에 물을 흠뻑 묻히고 짜기를 반복하며 쌱~ 훔쳐내는 손 길도 있었고 요기 조기 분주한 손 들은 거의 결점에 다 다랐을때, 눈에 보이는 오래된 쇼핑백들이 눈에 들어오자 마자 조 것들을 어디에 구겨넣을까 고심했었지만 스트레스를 받기는 커녕 짜릿한 입질처럼 흥분이 전신을 감았다.
여기저기를 둘러 보던 중에 내 눈을 거스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가죽의자가 보였을때,
마침 형수님의 추상 같은 명령이 저 놈을 내치라고 허락했다.
밖에 놓여져 있는 의자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지켜보지 않을려고 했었는데도, 어느 순간 문득 보여지고, 또 보여지는 어느 순간, 어느 아저씨의 손 길과 시선이 그 의자를 지켜보고 또 매만지기를 몇 번 후,
오래된 자전거에 싣기어지고 이어서 구렁이 같이 알록달록한 끈은 이 집에서 안 어울리어 내침을 당한 의자를 꽁꽁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라줄이 채워진 의자와 아저씨는 귀신처럼 걷지않고 흔들림도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디인지 모를 그 곳으로........의자는 또 누군가를 자신의 무릎에 앉힐것이다.
사랑이 넘쳐서 여기저기를 떠 돌다가 사람들의 지친 다리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지만 고맙다는 말 조차 듣지못했던 일찍 간 어떤 사람들처럼.......
의자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보일까?
오늘 떠난 의자.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이 집의 의자는 나와 이 집의 구성원들을 앉혔었지만 결국 떠나가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못 마땅한 것들이 많아진단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야말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혜가 곶감을 꿰어놓은 것과 동일하게 꿰어지므로 언젠가는 그 못마땅 했던 것들로 인해서 얻은 지혜들을 곶감을 하나씩 빼 먹듯이 입안을 달콤하게 적실때가 반드시 올것이라고했다.
삶 속에서 얻었던 비판적 사고는 즉 곶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무조건 싫어하는 어느 몹씁 약을 즐기는 집단과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곶 감을 얻어내는 사람들과 함께 선착장에서 방금들어온 배 속에서 꺼내어져 경매에 부쳐진 잡어들 같이 그렇게 치부해져 버려서 고급 레스토랑에 오를 수없는 처지가 되어지고는 한다.
그 것의 원칙은 존재한다. 그 원칙을 알지 못하거나 배척의 목적이 되어지면 어떤때는 양비론의 물결이 되어서 또 다른 레스토랑은, 잡어는 죽 한 그릇으로, 곶감은 얼음으로 목욕한 후식으로, 다소 떨어지는 코스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긍정을 함유하며 녹지않는 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길에 피어진 들 꽃 한 송이를 보며 감동을 할 수 있고
잡 초와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을 그릴 수 있고
또 갖 태어난 아이보다도 순수하다면.....그 평범한 듯 함이 더 고귀한 것이다.
그 것을 공부해야지!
알멩이를 보호해야 할 보호 본능이 장고의 세월 중에 껍 질을 만들었다.
껍 질도 부드러운 질감의 양파껍질과 바다에 사는 소라껍질까지 지상과 해저를 막론하고 그 다양성의 조화에 경이감을 떨칠 수가없다.
위험한 상황에서 보호 해야 할 것에대한 얼마 만큼의 효과를 얻었는가는 현재 지구상에 보이는 모든 보여지는것이 말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열거의 가치가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개체 나름의 목적과 과정을 낱낱이 파악하기란 여간 어렵고 번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도 껍질이 있다.
먼저 형상의 껍질이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으로 나뉘어져 있는것을 확인 할 수있고 딱딱한 것은 그 안에 부드러운 내용물이 있어 사고를 도우며 또 부드러운 것은 그 안에 딱딱함으로 골걱을 이루고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몸안 구석구석에 영양공급의 매개체가 거미 줄 처럼 얽혀있고 그 것을 보존하고자 외부에서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을 일 평생을 통해서 꾸준히 공급하고있다.
그 사고의 껍질은 인류가 수 십만년을 이어져온 결정적인 계기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때 양파껍질이나 소라 껍질은 그 목적이 다른 듯하다. 생물 중에서도 동물과 식물의 제 각각인 목적에 따라 사고력에 목적을 두고 있을때와 단순한 육체를 보호하고져 할 때에는 그 껍질의 존재를 어디에 배치하고 살아가느냐는 결정된 선택에 따라 지금의 형상을 유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있는 껍질 속 사고.
껍질과 껍질 속에 있는 사고와 사고는 여러가지의 유형으로 결과를 맺는데,
그 중에서도 알카포네는 참 특이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된다.
시카고에서 마약과 밀주 외에 여러가지 사업을 하며 많은 재물을 모으면서 그의 악명과는 달리 아프리카에 구호물자를 보냈던 그 시기에 동료이자 친구인 존을 야구방망이로 살해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마침내 어느 시카고의 말단 세무 공무원의 탈세부분에 대한 입건을 이유로 그 가 활보하던 시카고의 휘황 찬란한 밤 거리가 지척에 보이는 알카스트라즈 섬 감옥에서 형을 보냈었다.
사회에서 공공의 적으로서의 삶과 자의감이 발동한 구호사업은 그 의 삶이 이중성으로 단락되어져 생을 끝 맺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 할 수있을 것이다.
시카고 밤 거리가 어렴풋하게 보이는 알카스트라즈 섬에서의 감옥생활은 한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드르던 그 에게 창 밖의 모습으로 보이는 그 곳 시카고의 밤이, 기쁨의 공간이 아닌 다가갈 수 없어 영혼을 서서히 피폐 시켜 버리는 공포의 공간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출소를 하기 전까지 그는 미친듯이 이부자리를 폈다 갰다를 반복하며 '알카스트라즈 섬이 나를 죽였다'고 광란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껍질은 사고의 주체를 잘 보호하는 목적도 중요하겠지만 그 안에 연가가 담기기를 소원해야한다.
'껍질 속의 연가'는 바보가 되어야 가질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교육과 나는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 많은 시간동안 그래왔 듯이 앞으로의 시간들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은 무덤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아무리 시간의 굴레 속을 나아가다가 가끔 코코넛 같은 무게와 질감의 덩어리에 발 등을 찍혀서 걸을 수 없다고 해도 오리무중인 이 세계에 대한 내 열정은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너와 나의 서로를 인식하는 허브가 교감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먼 훗날 내 관 위에 $1와 꽃을 잊지말아라'
진심이라고 생각해왔고 그 곳에 나 모를 위선이 있었다고 해도 그 위선은 내 노력 속에 이미 퇴색되어버린지 오래라는 생각이 든다.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나와 뜻을 같이하고 격려해주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이미 바보가 되어있었다.
지인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것들을 그 들은 걱정 속에서도 믿어왔고 심지어는 자녀의 장래에 관한 내 바보같은 의견에 동참함을 주저하지 않았다.
적은 공간 속에서 갇혀있는 듯한 삶 들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을 그 들은 똑똑함이라고 생각 할 수있겠고 잘 결정된 지표라고 위로하며 살 수있겠지만
그 틀 밖에서의 자성되고 비판된 삶도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들이지 않은가!
오랜시간 내가 쏟아 왔던 것들이 이와 같은 것들이 되길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쪼개어 전달해 왔으며 또 그것에 대한 나에 대한 비판은 내 무덤에서 겸허히 받길 나는 소원해왔다.
유학을 떠 나가며 지금은 이별연습을 하고 있는 내 또 하나의 사랑하는 이 에게 말해줬다.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이제부터 네가 속했던 좁은 공간을 벗어나서.... 또 다른 넓은 공간을 가져라 . 훗날에는 진짜 멍청한 바보가 되어서 돌아와라'
에~라~이~ 바 보 같 은 노~옴~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기까지 내 곁에는 4살짜리 딸과 무엇인지모를 신기한 일상을 기록하기 위한 16미리 동영상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Metro North 기차 편을 타고 맨하탄 종착역에 내리면 42가 그랜드 센츄럴 지하도를 건너야 퀸즈 집으로 가는 7번 전철을 탈 수있었다.
철 없는 4살박이 딸은 연신 두리번 거리며, 길위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 정신을 팔아서 내 발길은 더디어져만 갔었다.
워낙 오랜된 지하철이라 깨끗한 환경은 기대 할 수없었고 100년이 훨씬 넘은 지하도는 내가 적응하기에 상당한 최면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의 200년 전에 이 지하철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전되어지며 내 앞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중얼거리는 열망들을 듣고 존재해 왔다는 것에대해서 존경심까지 들고했었다.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한참을 딸의 손목을 잡고 발을 재촉하고 있을때, 어디에선가 가깝게 들려오는 노래가 점점 가까워져옴을 느꼈을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하도의 가장자리에 빙 둘러서서 노래를 청취하고있었다.
딸 아이의 호기심에 편승한 나는 그 가수의 노래소리에 이끌려서 어느덧 그 그룹사이에 끼어들게 되었다.
어느 흑인 무명 가수인듯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입을 열어서 노래를 부를때 마다 빠진이가 추하게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그 무명가수의 노래 소리는 모두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너무나 열정적인 모습에 금방이라도 사인을 받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그의 빠진이의 연가는 낙원으로의 초대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구했었다.
한 참이 지나서도 잊을 수없었던 어느 무명가수의 작은 공연은 나에게 미국에서의 삶에 윤활유를 공급했지만 지금도 나는 왜 그의 노래를 통해서 미국을 볼 수있었는지 또렷이 알 수가없다.
맨하탄 42가 그랜드 센츄럴 터미널 지하보도는 그처럼 나에게 그날 아련한 꿈을 선사했다.
내 딸에게도..............
한 여름 밤이 성금성금 다가오고 있다.
방송국들은 제 각각 소름끼치고 스릴있는 공포물을 제작하기 위하여 작년 겨울 쯤이면 이미 기획을 마쳤을 것이고 이미 촬영은 끝났을 것이다.
어렸을 적 내가 보았던 영화의 제목이 생각난다.
'월하의 공동묘지' 라는 타이틀과 포스터에는 의시시한 분위기의 무덤, 그리고 어느 소복입은 여인의 날카롭고 음산한 미소뒤에 공포 속에 죽어가는 어느 몹쓸 선비하며..........
영화를 보기 전 이었지만 "으~으~으~" 하고 울부질것 같은 여자 귀신의 곡성 등...
대 부분의 이런 류의 공포 영화를 시청하고 나서는 거의 한 달동안 화장실을 갈 때에도 누나의 투정을 빌어서 볼일을 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산 기슭에 덩 그러니 보이는 무덤은 곱게 다듬어져 있다해도 밤 이면 그 무덤이 두 개로 갈라지고 곧이어 음산한 연기와 함께 관이 벌떡일어서며 곧 관뚜껑이 열리고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의 모습이 순간 정체된듯 보이다가 곧게 서있던 시신이 눈을 갑자기 부릅뜬 후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로 미끄러지듯이 관을 나와 내 앞에 우뚝 서 있을거라는 상상을 제공하는 실체로 보였다. 그래서 마을 산 모퉁이에서 비스듬이 보이던 동그랗게 바가지를 업어 놓은 듯한 모든 무덤들은 공포의 대상이자 경배의 대상이 되어져왔다.
그러한 시절을 오랬동안 보낸 후, 미국에 도착하고 여장을 풀었을때 마을에 위치한 공동묘지들을 보게되었다.
잘 정돈된 공원같은 분위기의 공동묘지는 공포의 대상이기 보다는 오히려 정감마저 주는것이 아닌가!
서양 영화에서 보던 좀비를 상상하기에는 너무나 포근하고 아늑해서 가족이 언제든지 찾아와서 추억을 어루만질 수있는 그런 종류의 쉼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공원같은 공동묘지는 모든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볼 수있고 죽음을 그저 인간사의 한 부분이라고 자연스럽게 추모할 수있는 그런 장소로 여겨져왔다.
시신을 안치한 그 공동묘지의 모습이 정서의 엇 갈림으로 인해 어느 곳은 공포의 대상이 되며 또 어느 곳은 편안한 공원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나뉘어진 동 서양 사고의 차이와, 문화와 애환의 본질은 이 처럼 공동묘지 조차도 극명하게 그 시각을 공포와 쉼터로 나눠놨다.
인생 역전을 위해서 일본에서 가장 히트치는 상품을 국내에 도입하기 위하여 종주국을 수 십여 차례 방문하고 실무관계자와 많은 접촉을 했다고한다.
온갖 수모와 역경 속에서 그 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하여 많은 날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공장 근처를 기웃거리며 그 꼬불꼬불함의 비밀을 얻고자 간 쓸게 다 버리고 본인의 인격조차도 아랑곳하지않은채 그 신 기술을 마침내 도입했다고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어느 얼빠지고 기회주의적인 사상이 호박껍질속에 구겨지듯 넣어진 어느 부족의 이해못할 전통음식처럼 한참 부족한 인사가 그 기술을 슬그머니 그 위인의 뒷 주머니에 밀어넣어줘서 오늘날 대한민국에 새롭고 비틀려져서 꼬불꼬불해진 0면을 만들게 되었다나? 그리고 지금은 세계 시장을 이 꼬불꼬불한 면으로 온통 덮어 버렸다나 뭐라나?
덛붙이자면 이러한 자기의 노력과 열정은 모든 배 고픈 국민의 식 생활을 책임지기위한 대통령님과 본인의 의지가 결실을 맺은 창조적인 역사의 산물이란다. 즉 도둑질한 것을 국가의 원수가 잘했다고 칭찬했단다...
이런 제길................................................................
위글을 통한 비판적이고 논술적인 화두들 꺼내고자 조금 장황한 문장을 도입했다.
각설하고 이 과정이 정말 애국심의 발로일까를 생각해 봄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한국과 중국의 관계성 속에서 중국에서 우리기술을 빼어낸 부분은 격분한다.
불과 몇 십년 전에 남의 나라의 기술을 빼 돌리고도 마치 애국심의 순수한 발로였다고 말하는 어느 이해못할 기업가의 열변을 귀 기울이며 목적을 위해서는 산업스파이까지도 용서 받을 수있다는 논리를 펼친 그리고 성공한 사람의 달변으로 알았던 우리가 이중잣대의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면 우리 후손들이 받아들여 할 바람직한 논리는 어느 방향이 정상인가?
도둑의 부모를 둔 자식이 부모를 향한 평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전개되어진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듯하다.
분명한 것은 못난 아버지를 향한 딸의 애정이 그에대해서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 못난 아비의 바람은 옳은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것은 그르다고 말 할 수있는 딸을 자랑스러워 하는것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봄 볕이 따사로운 어느 봄에 여럿의 친구들이 의기투합하여 산을 찾게되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의논하지 않았지만 그 곳에는 그 들이 찾고자하는 것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중에 한 아이는 예전에도 그랬 듯이 어떤 종류의 위험에 대비하여 기다란 막대기를 한 손에쥐고 오솔길을 앞장서서 친구들을 이끌어 나아갔었다. 올라가는 산 기슭에는 들풀이며 진달래며 개나리들이 만개해 있었고 상큼한 풀내음이 그 들을 들뜨게까지했다. 거의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에, 한 그루의 활엽수 밑에서 아주작은 새들이 둥지안에 있는것을 발견했다. 작고 올망졸망한 아기새들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확인하게 된 것은 한참 나무위를 올라가서였다. 아마 산 속에서 아기새에게 놓일 위험에 대비하여 어미 새는 이 나무 꼭 대기쯤에 둥지를 만들었었는듯했다. 새들이 내 눈과 마주치자 일제히 입을 벌리고 먹이를 줄 것을 호소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내가 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때에 뒤 통수를 때리는 무엇인가에 중심을 잃고 거의 나무위에서 떨어질뻔 했었다. 밑에서 있는 아이들이 위험을 알리기 시작했다. 곧 정신을 세운 후 내 머리를 공격했던 것의 정체를 파악하기위해서 주위를 둘러 보았을때 아무것도 발견할 수없었다. 서둘러서 나무위에서 내려왔을때에 주위의 아이들은 그 공격의 주체가 노란 빛의 작은 새인데 아마 어미 새인 듯하다고 말했었다.
일단 실체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심히 주위를 살피고 모두다 몸을 낮춘채 그 나무근처에 다가가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무섭게 비행하여 다가오는 노란 색깔의 출격에 모두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내 삶 속에서 처음 느껴봤던 아기 새들에 대한 부모 새의 저돌성은 오랬동안 나에게 많은 이야기거리를 제공했었다.
아기새들이 도움을 필요했을 때에
부모새는 항상 거기에 있었 던것이었다.
엄청난 진리는 아니라고 어떤 이들은 말했었지만 사실 그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은 살아오면서 느꼈었다.
진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문 하나를 사이에두고 나에게 그가 옆에 있음을 항상 알려주는 그 사람의 건기침을 들려주는 것이라고...........
그의 인기척!
내가 필요하면 언제라도 달려올 수있는 가장 가까운 듯한 거리....
사람으로 살아 간다는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는지는 나를 제외한 누구나 알고있는 진실이리라.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던 시간들이 너무나 오래되어서 이제는 내 나름의 내 자신에 기준을 두어왔었다.
어느날 오랜 시간을 생각해오던 중에 우연히 마켓에 놓인 생선들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싱싱하고 먹음직 스러운 멸치와 꽁치와 소라등 그리고 그 외에 갈치들이 몸을 나란히 눕힌 채로 진열되어 있었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비늘에 싸여지는 생선들을 바라보며 부족한 내 모습이 저 생선들 중 어느 생선과 부합되는지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모든 생선에 속 한 내 모습에 그냥 싫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진솔한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발전이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내 모습은 멸치였었다.
편협함과 오만함까지 절묘하게 조화된 보잘것 없는 멸치라는 생각이 들었을때 한없는 자책감은 나를 수렁으로 몰기시작했었다.
그래서 동물들 중 어느 대상을 내 마음 속에 그리기 시작했을 때 곰 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왜 곰 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어렴풋하게 정리가 되었지만 우직하게 살고 싶다는 것에는 내 스스로 이견이 없는 발상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와 호흡하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항상 강조 해오고 강요했던 특이한 이 가치의 미학은 모든 이들의 동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좋은 영향이 끼쳐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이제 소원이 되어진지 오래되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섬진강!
굽이치는 섬진강에는
하늘 거리는 눈부심과 너무 잘 조화된 그 모습에 눈물이 흐를것만 같은, 슬픔과 봄꽃 화려함에 흠뻑 취해있는 다정스러움과 산능성이를 파헤쳐 흉물스러울 것도 같지만 그것 마저도 정겹게 느껴지는 오래된 백발노인의 밥상 처럼 그저 좋음이 만연했다.
또한 달빛받아 더 하얗게 변한 배꽃을 노래했던 옛 시인의 노래가 여기가 아니었던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가슴을 스러내릴만큼 너무나 잘 조화된, 모든것들의 어우러진 풍경은 여기가 섬진강임을 마음으로 깊~이 안게했다.
알고 있는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너무 잘 조화된, 그리고 확연히 절제된 아름다움을.....
사람사는 세상도 이 처럼 섬진강 같으면야 조화로움에 더 할 나위없는 비교는 없을것이다.
옹기종기 모여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의 알 수없는 대화도 조화롭고, 줄지어서 이동하며 느려터진 차량행렬도 조화롭고, 삭막할 것만 같고 지루하게 보일 듯도 한 시커먼 아스팔트도, 느릿하게 창공을 날고 있던 어느 못생긴 새 들도 , 예쁘기만 한 섬진강은 나를 지금까지도 부풀어 오르게만 한다.
나는 전 인권이라는 인물의 가수를 좋아한다.
사실 그의 노래 속에 담긴 엄청난 철학을 좋아 할 뿐 깔끔하지 못한 그의 삶을 좋아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털털한 외모는 좋아하기도한다.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원~
덥수룩한 그의 외모에서 나오는 노랫말은 살벌하게 에이는 북풍한설 속의 쌓이다 나무잎위에 얼어붙은 눈 꽃같으며 시냇물위에 파랗게 얼어붙은 얼음 이불과같음이 있고 낚시꾼의 낚시대에 걸려올라오던 물고기가 주낚을 탈출하여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형상같은 통쾌함과 아타까움이 있으며 우리누이가 조심조심 논 두렁을 거닐다 논으로 입수해버리는 웃음과 애처로움이 철저히베인 맛있는 철학이있다.
한 녀석이 있었다.
킨더가든 때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와 미국에 있는 학원에 둥지를 틀고 지금까지 11학년이 될때까지 무던히도 내 속을 썩였던 녀석이 있다 . 나와 그 놈의 관계는 고객도 아니며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 안듣는 웬수는 더더욱 아닌 이미 부자간과 같은 관계가 된지 오래되었다.
평소에 공부도 제법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사교성도 출중해서 친구들을 인도하고 거룩한 일과를 수행할때면 그 옆을 따르는 친구들의 수가 거의 개떼 수준과 같고 때로는 Mr 오바마가 뉴욕에 정치 시찰을 왔나싶을만큼 다수의 무리를 거느리고 다니며, '위험한 일이오니 제발 이 박 선생의 체면을 봐서라도 그 짖만은 삼가해 주시길 원하나이다'하고 수 십차례 애걸복걸했음에도 불구하고 3분후면 그 일을 해버리는 참으로 무도한 놈이기도 하다.
그러한 그 녀석을 '다~시 돌~고 돌고 돌고'를 듣는 순간 문득 생각나는 나 만의 교육법을 생각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교육법 바로 그것이었다!
참으로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참 끈적이는 성격을 가진듯하다.
요 녀석이 말썽을 부리면 석고대죄를 하듯이 서로 마주보고 일장 훈시를 감행했었다. 미국에 있는 교포 자녀들의 특징이라면 특이한 점 이 있는데 요 놈들이 말이 슬쩍 딸린다 싶으면 갑자기 영어를 내 뱃고 하는데 요 녀석도 항상 버릇처럼 그 짓을 되풀이 하곤했었지만 그래도 내 출중한 영어실력은 요 녀석을 항상 압도해 나가는 것은 별로 어려움이 없었지만 한 10~20분을 넘지않은 잔소리의 반복함이 효과가 없음을 알았던 어느날, 그 날은 이 똑같은 대화를 3시간 동안을 계속 이 가사와 같이 '다~시 돌~고 돌고 돌고'를 한 20번을 반복한듯했다. 그 행사가 마친 후에 내 발과 고 놈의 발은 까아맣게 이미 죽어 있었고 한 20분 동안을 피가 통하게 하는 작업을 했었다.
결과는 그 이 후로 전승의 영광이 나에게 있었다.
참 자랑스럽다. 끈적끈적한 내 고집통이....
천하무적 박 선생!
앤디야, 난 너를 무척 사랑한단다....이~놈 너 장가 갈때까지,,,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또 다~~시 돌~고 돌~고
네가 잘 할 때까지 나는 항상 준비 되어있다.
길을 잃었던가?
첩첩 산중에서 어느 날 길을 잃어버렸다면 해야 할 일을 당분간은 생각할 수없을 것이다.
그 공황의 상태에서의 탈출구가 어데인가는 있을 법도한데 당황한 상황들이 이 탈출구를 찾는데 방해를 해 대기 시작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상황은 발이 없고 손이 없으며 또한 사고력은 아예 가져본 적조차 없는데도 이 놈은 보챙이와 보챙이의 친구들을 벼랑으로 한 없이 이끌어 가고 급기야는 절망 저 나락으로 패댁이를 치기시작한다.
보챙이의 친구들은 패댁이를 당한채로 일어나기를 희망하며 간절한 염원을 머리 속에 그려보지만 이미 땀으로 범벅되어 버린 천근같은 옷하며 눈 속을 파고 드는 짭짜름한 액체는 곧 희망까지도 앗아가 버리고 그래도 아직 햇볕에 노출되어 주위가 환 한데도 그 희망의 끈을 한 동안 바라볼 수없었다. 그리고 끝 없는 절망 속의 대화는 무엇인가 빛을 볼수있고 잃었던 길을 더듬어서 찾을 수있는 현실까지도 망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터널의 탈출이 있는 것일까를 한 친구가 물었을때 보챙이는 말문을 열며 빙그레 웃기 시작했다. 그 터널의 시작은 너희들이 만든것이라고 독설을 내뿜기 시작했다. 한 순간 고성이 오가고 그나마 지친 보챙이와 보챙이의 친구들은 더욱더 지쳐 가기만 했을때 보챙이의 친구들은 보챙이에게 선언 하듯이 말했다.
그 시작은 어느곳인지는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지금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을 마쳤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희망의 끈을 찾을 수있고 처음은 있었지만 끝은 있을 수없으며 그렇게 양심을 아직 소유하고 있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고 보챙이가 친구들을 향해서 마치 리더인양 말을 마쳤을때 보챙이의 친구들은 일제히 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말도 없이 그 자리를 보챙이만 남겨둔채 훌쩍 떠나버리고 말았다.
한 강연자의 강연을 열심히 청취 한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내용의 강연을 들어야 하나 하는 선입견이 앞 서서인지 별 다른 집중을 하지 못했었다.
강연 소재라고 해봤자 '몽유도원도' 였기에 별 다른 감흥이 있을리 없다는 생각은 한 순간에 나를 지루하게 이끌고 있었다.
곧 머리 속은 나비들이 날아다니며 봄 날의 아지랑이에 취한 뜰에 묶어놓은 강아지 같이 그렇게 그 시간은 흘러만 갔다.
강연 내용이 무르익을 즈음에 강연 자는 그 그림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 그림은 조선 시대의 다른 화가와는 다른 기법이 가장 큰 가치라고 설명하기 시작했으며 마치 지붕위에서 그린 듯한 기법은 후기 조선시대에 커다란 영향을 준 새로운 화법이라는 이야기 였다. 그리고 그 강연자는 새로운 것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 몇 백년 후의 자신의 이름을 안견이라고 후세가 기억하는 커다란 계기가 아니었느냐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그 강연자는안견의 삶을 통해서 메세지를 전언하려 했던 것들이 적중되었음을 알고 화색이 돌았지만 감동의 가치를 정작 다른 면에서 깨달았을 때에 나는 이미 전율감에 고통스러움까지 느끼기 시작했었다.
안견의 고뇌와 시도에 대한 똥 고집은 나에게 그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시대에 필묵과 화선지로 표현 할 수있었던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하얀 여백위와 검게 표현 하는 필묵의 지극히 절제된 조화!
평면상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옮겼을때 사실과 똑 같다느니 또는 어떠한 이상이 담겨있다느니가 고작 감정평이 되었을무렵,
그 작자가 마음으로 보는 대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통념과 기법을 넘은 그 사람이야 말로 심화법의 단계에 도를 스스로 접근한 호연지기의 위인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했었다.........
나는 오래 전에 한편의 영화를 보며 위 와 극명된 삶을 산, 가상인지 실제인지는 모를 위인을 보며 감동한 일이 있었다.
그 영화의 타이틀이 '포레스트 검프'라고 기억된다.
그렇게는 너무 모자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닌 듯한, 주인공의 삶 속에 얽혀가는 또 하나의 바보같은 삶!
굴레 속에서 스스로 걸어갔던 군 생활이 시작될 무렵, 한 상사가 도열되어있는 군인들을 하나 하나 지나서 그 그룹 속에 속해있는 바보 주인 공에게 물었다.
군에 들어온 이유가 뭐냐고 표독스럽게 물었을 때 그는 대답했다.
"상사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 군에 왔습니다" "그래 그게 정답이다"
한 동안 멍 하니 그 대화가 내 마음을 후려 치기 시작했던 기억이난다.
지금도 그 장면은 내 삶 속에 커다란 교훈이 되어왔다.......... 때로는 삶의 중심이 흔들릴때면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 중 바람에 흔들리며 거리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공허함과 분주함 속에 놓인 깃털을 그려본다.
분명 몽유도원도와 포레스트 검프의 교훈은 다르다 하더라도 삶의 정석속의 정금임은 틀림 없을것이다.
내가 느꼈었던 것이 정석이라고 말 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가오는 날 우리 사랑하는 이 들이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6월 어느 날 그리고 월드컵이 한창인 밤에 .......
덩치큰 곰의 재주부림은 이제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 곰이 그저 식탐에 마음을 빼앗겼을 때의 실망감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참하다.
나는 곰을 사랑하고 있지만 게으르고 저 밖에 모르는 곰은 당연히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이제는 우리가 그 곰이 되어야 할때가 왔다.
날씬하고 오랬동안 그리고 영원히 지속되어질...
날씬하고 날렵한 몸매를 꿈꾸며.....
이 세상에 참 가치를 입증할...
NY Edupia의 놀라운 걸음은 시작되고있다.
뉴 페러다임을 향해서!
인공섬의 설계가 이제 끝이 나고 있다.
이제는 종착역이 저 만치 보이기 시작했고, 남 들이 절대 하지 못 할 일을 마무리 할 일만 남아있다고 생각하자니 입가에는 이미 미소가 옅게 보임을 느낀다.
탐욕이 없고 누구나 좋아 할 만한 그 꿈에 그리던 인공섬이 이제는 설계를 마치고 커다랗게 건설되어질 날이 멀지않았다. 얼마나 오랬동안의 계획이었던가!
어떤이는 점잖게 타일렀고 또 어떤이는 한 손에 과자를 뒤로 감추고 과자의 맛을 설명했으며 또 어떤이는 네가 꿈꾸는 진실은 바람이라고 조언했었지만 내가 꿈꾸는 인공섬은 당신들의 조언과는 비교할 수없는 실체가 다른 것들이라고 수 없이 마음에서 외치며 오랜세월동안 되 뇌었던 소중한 보물들이어서 눈물나도록 그 완성을 기다려왔었다.
그 인공섬의 종착역은 이제 올 해의 말을 넘기지 않을 것이며 토끼와 자라와 또 곰들과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이 깜짝놀라워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름다운 섬이 될것이다.
몇 명의 친구와 함께 완성 할 인공섬은 한 손에 과자를 감추고 과자의 맛을 설명하는 곰들은 없다고 단언하며...행복한 잠에서 행복한 현실로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홍선생은 어데있지?!
다들 모였니?
서울에서..
흙 먼지 처럼 하얗게 앉은 오래된 우정과 인연 등이 어떤 때는 퇴색된 듯보이다가도 빛 바랜듯 보이다가도 한 순간, 그게 마치 본질인 양 마음을 차분하게 이끌어 버리고 심신을 눕게하기까지하는 조화를 부리는 것을 나는 몇 십번 느꼈던 적이 있다.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닌것을 무엇을 그렇게 깊이 생각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지만 삶의 무게가 제 각각인 연고로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기까지는 수 많은 대화가 필요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었다.
그것이 그것이며 저것이 저것 인게 분명하지만, 피를 토 하듯이 저 밑에 있는 나를 내어 놓아도 또 다른 나를 내어 놓아야 한다는 중압감은 곧 본질과 현상 속에서 자괴감을 가지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하고 한없이 울기 시작했었던 일이 많았다.
그래도 네가 좋다!
한 없이 좋아서, 그리고 이제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병이 났구나!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
삭풍의 날이 다가오면 마음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고 쓰러지는 마음 한 켠을 스스로 달래가며 너무나 청명하게 빛 나는 달과 별이 어우러진 밤 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이난다.
별 빛이 무수하게 쏟아질것같이 그 처럼 아름다운 밤이었지만 그 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때가 있었다.
부모의 마음이 너무 애처로워서 비록 철부지 였지만, 시리도록 저며오는 슬픔을 2000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삭풍의 날에 대한 외면으로 머나먼 밤길을 달래야만 했었다. 어쩔 수없는 상황은 나를 그 처럼 혹독하게 이끌어 왔었던것같다.
그 날은 그렇게 아프도록 아름다웠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픔과 슬픔은 아름다움과 별반 틀리지 않은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삶을 여미어 갈때면 항상 역경가운데서도 내성이 충만한 내 자신을 발견해왔었는듯하다.
삶은 용기라고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치도록 열변을 토해서 이야기 했던 시간들이 그 들 마음속에 와서 닿기까지는 오랜세월이 걸리겠지만 그 날에 차디찬 길 위에 몸을 뉘이고 하늘을 바라보며 2000년의 나를 생각했던것 같이 어느 아름다운 그들은 삶 속에서 거대한 인내를 가지길 나는 간절히 희망한다.
그리고 2000년의 어느 날은 다가왔지만
그 후에도 한 참을 나는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험을 해야만 했었다.
한 가지의 장점과 한 가지의 단점은 공존한다 고들 말 한다.
옳은것 같다!
매사에 얻는 만고의 진리라는 것에는 거의 공감이 간다.
요즈음 나는 한국에서 많은 대형학원 관계자들을 접촉하다가 문득 일장일단과 또 하나의 일장이 서로 공존할 수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교육행정에서 파생되어진 일반가정의 사 교육비 과대지출로 인해서 정부의 온갖 비효율적이고 탁상공론된 임시변통식 교육행정은 많은 사회문제를 만들어왔다.
따라서 지나간 세월동안 수도없이 변한 교육행정은 지탄에서 자유로울 수 가없는 병폐로 치부되어왔었다.
그런데 그 수 많은 정부 교육행정의 오류 속에서도 암적인 존재로 교육개혁의 당사자가 되어왔던 사 교육 현장은 이미 사회악의 인식의 틀을 벗어나있다.
물론 공 교육을 앞선 사 교육이 어느 면에서는 달가울리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사교육의 발전으로 인해서 공교육의 신선한 몸부림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활성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 교육의 미래는 비관적이지 않다고 생각된다.
한편 대형 사설 학원 들이 학원 인플라를 세계를 대상으로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이 아이러니컬 한 점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
영어 선진국인 미국이 오랜된 관행을깨고 SAT시험에 대해서 다시금 시험 행정을 정립하려고 노력하는데에는 한국이 그 중심에 서 있게되었다.
사실 미국의 교유행정은 복지부동이며 지나친 안위에서 오는 자기교만 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게되었다면 그 것은 본질자체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봐야한다.
이제 해마다 여름 방학이되면 수 많은 미국 속의 한국 학생들이 SAT고득점을 향해서 한국의 사설학원으로 뛰어든다.
공공연한 비밀이 된 시간도 어느덧 많이 흘렀다. 해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속의 한국학생들의 아이러니컬한 영어 고 득점 여행은 무엇을 말하는가?
수험자의 영어에 대한 갈급함을 해결할 수없는 영어 선진국 미국!
그리고 한국으로의 고 득점여행!
미국에서 SAT를 해 마다 강의했던 학원 관계자로서의 자괴감은 이제 자괴감으로 그쳐선 않될듯하다.
한국이 많은 시행착오를 격은 후, 이제는 교육에 대한 인플라를 세계의 영어권 국가로 역 수출하게 된 성과는 많은 시도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구태의연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야 만 할 때이다.
미국의 교육기관과 그 외 수 많은 미국내 사설 교육기관들은 스스로 가슴을 문지르며 씁쓸하지만 이렇게 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열망하는 학생들에게는 벼룩도 낮 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
일장일단 또 하나의 얻어지는 일장을 꾸준히 기억해야만 하지 않을까?
까~아만 소파에 앉아서 손녀를 보고있노라니
가느다란 손 가락이며 발가락등
하얗고 도톰한 볼 테기에 내 마음이 흠뻑 빠져버렸다.
요 놈을 한번 안아볼까 또는 저 기묘하게 생긴 손가락과 발가락을 한번 만져볼까 하는 충동에 곧 일어서서 내 손과 발을 씻고 양치질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화장실로 발 걸음을 옮겼다.
누가 내 손녀를 만져보려는데 특별히 말릴사람과 눈치를 봐야할 사람은 딱히 없지만 그래도 손녀를 안아보려는 데는 최소한의 의식이 내겐 필요했었다.
화장실 문을 들어선 후에 내 생각은 금새 변해있었다. 아무래도 샤워를 해야할 듯.....평소보다도 더욱 간절한 내 손녀에 대한 사랑은 언제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그 욕실을 나서게했으며 곧 할아버지로 만들어 버린 괘씸한 손녀의 행태는 까맣게 잊어버린채 그 기묘한 손녀의 손가락 발가락 볼을 훝어보고 어루만지며 사랑에 흠뻑 빠져만 갔다.
가끔은 혹시 체면이라도 구겨질까봐 그 애착을 주체할 수없었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힐끔힐끔 손과 발을 연신 훝어보며 그 신묘하고 고물고물한 자태를 감상하기를 여러번했었다.
오늘은 손녀가 세상에서 처음 뒤집기를 시도하고있었다.
그 사건은 온 가족에게 화제가되어 손녀의 엄마 아빠와 나 외의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는 곧 나와함께 응원에 나섰다.
실제로 한참이 흘렀지만 시간은 멈추었던듯이 지루하도록 흘러갔으며 곧 짧고도 긴 탄성이 방 안에서 밖으로 쏟아져나와서 월드컵 응원열기와 같은 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었다.
야~하 드듸어 뒤집고 말았다!
그 처럼 힘들게 송연이는 삶 가운데서 첫 관문을 유쾌하게 통과했다.
엎드려진 이 손녀는 자랑스러운듯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던 중..
어머나~ !!!!
곧 나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나를 보자 씨~익하고, 보이는지 보이지않는지 모르겠지만 천사보다도 훨씬 이쁘게 웃지않는가!
그 미소에 내 영혼은 이미 바람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TV에서 나오는 그 어떤 예쁜 딸 아이 또래의 아이들과 송연이와는 비교될 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삶들의 살아가는 법이 이 손녀의 오늘 사건으로 나는 알게된듯하다.
지금나는 아주 편하게 누워서 송연이에게 묻는다.
그 다음에 보여줄것은 뭐니 손녀야?
음 역발산 기개세!
그래 세상을 한번 뽑아 볼래?
200여년을 한 결같이 '풍족함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그 누군가 미국사람은 말 했다.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운 후에 또한 가정의 그릇을 대지위에 세웠다.
어느날, 어느 미국인이 나를 맨하탄으로 데려갔었다.
" Mr Park, This is the land of opportunity!"
정말 장엄하기 이를데 없었다. 거의 200여년 전에 그 들이 지었던 풍요함은 내가 몇 십년 동안 살아왔던 국가의 서울과는 사뭇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버티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또 한 사람의 그 둘 중 하나와 깊은 대화 속에서 색다른 경험을 한 일이 있었다.
그가 열변을 토했다.
많은 것들을 미국은 이뤄냈다.
그 풍족함 속에서 얻은 것들을 그는 하나 하나 열거해 나갔고 그의 숨결은 흥분으로 가득찼었던 기억이 난다.
한참동안을 들어야만 했던 그 시간 속에서 그는 동양사상에 심취한 이야기들을 마치 자신이 자랑한 것들에 대한 내 기분을 간파하고 뭔가 던져주 듯이 꺼내서 풀어 놓기 시작했다.
풍요함의 추구 속에서 얻은 'the lost world'.....
아들을 잃고 딸을 잃고 아내와 남편을 잃어서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미국인들이 거울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서울은............그 거울을 버리려 하고있다............풍요함을 얻기위해서........
산 속깊은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였다.
당황될 듯 싶은데 전혀 당황하지 않고 주위에 있는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겼었다.
골이 깊은 계곡으로 펼쳐져있는 때 이른 가을의 전경이 무척 풍만해 보였고 그 계곡물의 깊고 옅음의 조화 속에서 어우러지는 물 소리에는 초 가을의 낙엽이 둥실 물살과 함께 떠 내려갔다.
산능성이에서 비스듬하게 태양은 누워있었지만 그리 추워질것 같지도 또 더움이 지속될것같지도 않음에 내 몸은 고단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그래도 모든것은 형통한듯 느껴졌었다.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으름'이 한 웅쿰 메달려 있었고 그래도 아직남겨놓은 우유며 과자 몇개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크림빵 몇 개는 다소 힘겹게 메달려서 나를 유혹하는 으름과는 견 줄수없을 만큼 든든한 내 삶의 보루인양 느껴 졌었다.
두려움이 없었다.
길을 잃고 오랬동안 산 속을 헤매는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이 이미 더 할 나위없는 자유함으로 인해서 퇴색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느꼈었던 그 모든 것들은 지금도 삶이 비좁고 지쳐 갈 무렵이되면 내 양다리에 힘을 공급해 주는 커다란 원동력이 됨은 이미 20년도 훨씬 더 지나쳐 버렸다.
무게에서의 희망을 바라보았던 기나긴 여정동안 나는 학교에서의 생활속에서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야기를 들려주고는 했었다. 바라보는 시각과 그 탐험속에서 그 들과 끊임없이 오고가는 대화속에는 그 환경에서의 방황이 희열과 일그러진 두려움, 그 둘 중에 하나는 어김없이 박혀있었음을 느꼈었고 우리들의 대화는 점점 '무력답수'를 득도한 양 한 조각의 배를 타고 강의 중심부를 노닐고있었다.
희열의 공급!
그 것이 신 만이 선사하는 선물은 아니었다. 신과의 좀더 가까워진 오랜세월동안 여정의 여유가 나에게 있음을 발견했을때 이미 나는 신의 대리인 인양 그 안광속에서 오는 편안함으로 내 사랑하는 이들을 사로잡을 수있었다. 나는 그 들을 바람결에 그리고 여유로움이 변하여 나른함까지 함유된 그 깊고 깊었던 초 가을의 정경에 눕히고 싶었다.
아!~~ 편협함에서의 분쟁들....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스려 볼 수있다면 좋을듯싶다.
두려움에서 모든 사랑하는 이 들이 편협함을 떨쳐낼 수있도록...에듀피아는 지금 그 길 잃었던 산 속으로 스스로 가기를 열망한다....
난 뜨거운 뙤약볕이 한창인 어느 6월중순 경에 나를 행복하게 했던 제임스라는 이름을 가진 한 유치원생을 기억한다.
항상 말썽꾸러기였는데 그 애만이 가진 독특한 시각과 정신세계로인해서 나는 그 애에게 홀딱 빠져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나는 너가 너무 좋아'라고는 표현한 적이없었지만 그 녀석은 너무 사랑스러웠고 혹시나 하루라도 학원에서 보이지않을 때에는, 내 몸은 이미 궁금하고 보고싶어서 달아올라있음을 몇 번 느꼈었다.
용모가 준수한 것도 아니었고 말솜씨가 다른 여느아이들보다 훨씬 나은것도 아니었지만 문득 한 번씩 이야기를 할 때면 요 놈이 과연 유치원생일까 아니면 한 구순을 훨씬 넘긴 내 증조 할아버지뻘 되는 연세일까 한참을 고민하고 번뇌해야 할 때가 많았다.
고 놈은 이빨이 앞니를 포함해서 한 7할정도가 이미 빠져있었고 길을 걸을때에도 고개를 너무 흔들어대서 시선의 향방을 파악하기란 미국 성인남여 모두에게 설문조사를 해도 알 수없다고 말 할 수밖에없는 정말 산만한 녀석이었다.
그런 고 녀석이 어느날 우리 학원의 신입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알듯 모를듯하게 시선을 요리조리 옮기는것을 나는 알았다.
요 녀석은 평소에도 행동거지가 기이하기 이를데 없는 녀석이라 항상 어르고 달래와서 누구보다도 고 녀석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나는, 아주 재빠르게 녀석의 의도를 파악하기위해서 아주 가까이에 떡 버티고 서서는 배를 불룩하게 내밀며 고 놈의 정면을 가로막고,
'이~노옴'
하고 기선을 제압하고나섰다. 내 의도는 항상 그랬듯이
James! Don't even think about it.(제임스 꿈도 꾸지마!)
내 마음에는 이미 편견과 오만이 싹 트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요 녀석도 나를 향해서
'이 노옴'
이라고 말하며 내 시선이 튕기울만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에 내 지엄한 존재의 여부가 한 순간 요 쪼그만한 녀석앞에 무너지는 순간이라 여간 당황스럽지않은 참 묘한 현상이 한 5초 지속되었을까? 당황한 나는 이 해괴하고 모호한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까를 생각하는 순간, 이 상황을 깨지않으면 안된다는 일념으로 적당하지만 큰 소리로 "Why are you so stay over here?' and what are you looking at? 하고 기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제임스는 내 막연한 예상과는 다른 뜻 밖의 대답을 했다.
잘못하지 않았으니 "이 노옴"하지말라고. 그리고 몽땅 빠져 몇 개밖에 없는 이를 드러내 보이며,
You know Mr. Park. She is so '비~이~티~폴!
고놈 참.............................그 거 였 어?
선생님이 뭐가 그리 예쁘게 보였던지......
선생님의 시선을 등에 업은 제임스의 반항기는 내게 그 날 커다란 도전으로 나를 당황케했다.
그 날 나는 인생을 새롭게 느꼈었다.
사십년이 훌쩍 넘은 나와 오년묵은 제임스는 동격의 인격을 가질 수 있다.
그 인격을 내 기준에 맞춰, 헐어버리려고 시도하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하지말자....
15년 전에 뉴저지의 어느 동네에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분이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한 일이있었다.
소박한 두 부부가 마음에 들었던터라 그 들을 잘 알지는 못 했지만 흔쾌히 장소와 시간이 적힌 쪽지를 얼른 받아서 기꺼이 가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오늘 저녁은 외식이라는 생각도 무척 즐거웠지만 그 집은 오래 전에 미국에 둥지를 틀었던터라 우리보다는 훨씬 안정된 생활을 하는 집이기에 사실 손님들에게 내어 놓는 음식이며 여러가지 다과들이 일상의 수준을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그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요리조리 집 들을 피해서 그 집에 다다르자 사는 풍경이며 모든 것들이 기대를 저버리지않는 수준이었고 특히 자그마하고 올망졸망한 화분들이며, 곱게 빗질한 파아란 잔듸들은 내 마음을 한 순간 풍족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는 들뜨게도했다.
특히 작은 현관이 었지만 사람이 들어가는 순간 편하고 정겹다는 느낌을 줄만큼 예쁘장하게 치장한 작은 동제 장식품들하며 묘하디 묘한 작은 악세사리들은 그 집 부부들만큼이나 다정스럽게 우리를 반겨주는듯보였다. 특히 그 분들의 취향과 성격을 알 수있는 거실의 가전기기들은 잘 정돈되어있었고 유득히 빛 나는 것은 TV옆에 놓여있는 커다란 노래방기기였다.
곧이어 야채와 고기들이 줄줄이 이어져 커다란 밥상위에 놓여졌고 우리들은 초대 받은 다른 가족들과함께 접시들을 하나하나 비워갔다. 끔직하게도 맛있었던 기억이었다!!
식사가 다 끝날때 쯤 부인의 권유로 못 이기는 척 '맆스틱 짙게바르고'를 몇 소절이어 갈 무렵이었다.
그 집에 늦 둥이라고 불리우는 4학년 쯤 되어보이는 아드님이 하나 있었다.
평소에도 몇 번 봤지만 인사성도 바르고 잘 생기기도 해서 아들이 없는 내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었던 그 아이가 밖에서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를 들었던지 아주 빠른 걸음으로 내 노래를 아랑곳하지않고 뛰쳐나갔다. 아마 빼꼼히 문을 열었을때 몇 번 본듯한 기억이었었는지 내 무대를 향해서 그 옆에 계신 제 아버님께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아빠, 아빠 친구들.... 밖에 오래된 것들. 많이왔어.."
그 애의 아버지는 연세가 적지않아 이미 머리가 하얗게 쇠어있었으며 그 친구분들도 역시.....
우리는 모두 너무 많이 웃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웃어야 한 일이었던지를....
넓게 펼쳐진 잔듸가 있고 광 물질이 풍부하며 또 수정같이 맑은 시냇가가 흐르는 산 자락 아래에 여럿이 뛰어 놀 수있는 놀이터를 만들었습니다.
그 시냇가 상류에는 커다란 인공섬을 만들고 저 건너 쪽 또 하나의 우리가 사는 곳에도 역시, 커다란 인공섬을 만들자고 누군가 남이 쓰다 버린 도화지를 가져오며 말했습니다.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위에 그 인공섬의 이름을 적어넣었습니다.
그 인공섬의 이름은 '뉴욕 에듀피아 주식회사"라고 지었습니다.
2010 06 02 15:55PM '뉴욕에듀피아'가 7인의 발기인과 함께 주식회사로 거듭나다.
깜짝 놀랄 7인의 발기인이 서로 서명 날인하다. 이 날에.....
누군가가 태산자락을 넘어 올때까지 기다린다.
그 에게는 멀고도 먼 여정이겠지만 내겐그 수고로움까지 아랑곳하지 않은 초연함의 기다림이 있었다. 그 것이 아프고 고될지라도 그 것은 아름다운것임에 틀림없다.
늘 푸르런 것이 시야를 탁 트이게 해서 좋은 가하면 늘 하이얀 것이 마음을 밝게해서 그렇게 좋게도 한다.
때때로 태양볕에 이글거리는 들 길을 걷기도 할 때면 반 팔 셔츠를 어깨가 보이도록 시원하게 걷어도 무의미 할 때가 있다. 더불어 갈증이라도 느낄때면 어디에서든 논 물이라도 실컷 퍼 마시고싶은 갈증에 정신이 혼미 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끔찍하리 만큼 멀고먼 시간도 잠시.
내 가 그리던 시간은 한 번 쯤은 오고 말았다.
그 처럼 손 을 내 저으며 내 가 너 처럼은 기다릴 수없었다고 말했었는데, 밥 상 너머에 보이는 녹색의 빛 줄기를 보고 드듸어 기다림의 끝자락 후에 또 다른 길을 재촉해서 갈 지언정 서광이 되어서 가을을 맞고 말았다. 오늘 6월3일 날 한국에서....출발을 앞두고....옳바른 것을 제발 구별하랬더니 결국은 그랬구나....이제 또 갔으면 좋겠다.....제발..사랑하는 이 들아 이제 바르게 가자.....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틀림없이 저것이라고....
하늘이 무척 높아서 마치 가을 날씨같은 늦 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은 수채화를 닮은 듯하고 냇가는 우리가 그리던 수묵화와같이 굽이침이 시야를 흔들리 듯 보였고,
산 아래에서 성큼성금 한 두 발을 연달아 이어가자 비스듬하게 보이는 100년 쯤 넘어보이는 묘가 한 세 개쯤 흩어져보였다.
거기에 잡초가 무성한 또 하나의 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틈틈히 그 곳을 방문하여 놓았던 꽃 다발이 이리 저리 바람에 날렸는지 아니면 물에 앁겨 내려갔는지 몇 개쯤이 한 너 댓발아래에서 놓여져 있었고 봉분은 가라앉을대로 가라앉아서 머지않아 떼 없는 민 둥성이가 될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려왔었다.
거의 눈이 침침해져오며 내 손은 별로 내키지않은 그 봉분을 향해서 내 뻗었고 흩어져서 보기 흉한 잡풀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눈을 한 없이 따가워지게 하기 시작하자, 입은 윗 옷으로 연신 눈가를 훝어내기 시작했다.
우리 친구의 어머니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바람소리였으면 좋을 듯했다...!
친구는 말했다, 그 말은 마음으로 읊조려서 하는 아주 조용한 말 같았다.
샌드백에 넣어서, 때로는 가슴 속에 넣어서, 때로는 내 친구의 커다란 몸을 다 자란 성년이 될 무렵까지도, 그 분이 그 곳에 묻히기까지, 한 없는 사랑을 쏟아부었던 그 시간까지...
그 분은 내 친구를 임종이 될때까지 한 없이 기다렸다고한다...
그래서 부모는 위대한가보다!
그래서 나는 이 위대함을 끊임없이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읊어댄다.
부모로라는 이름만으로도 너희는 그 들을 존경하기에 충분하다고.....
SEDU Master Park
한문은 잘몰라서 그 냥 한글로 '능공허도'라고썼다.
이 말이 하늘길을 열고 다스린다는 뭐 그런 뜻이란다.
이 말을 처음접 했던게 중학교 시절에 읽은 무협지가 처음이었다.
사실 그때는 그런 길이 있다면 속세를 떠나서 산 속으로라도 들어갈 용기가 있었다.
교육을 시작하고 오랜시간을 견디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능공허도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주면 먹고 안 주면 먹지않는 남 들이 다 가는 길을 동화되어 걸어왔었던것 같다.
그런데 왜 세삼 이제와서 초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는가?
이제 와서 산 속에 입산하여 도를 닦을 수도 없고 또는 오피스에 앉아서 그 비방을 찾을 수도없고, 그런던 중에 몇 일 전에는 참으로 난감한 마음으로 마음이 아려왔었다.
그런데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참 먹을 만큼 먹은 나이지만 순수성은 아직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정신에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같았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사랑이 엄마에게 하면 철이 아직 들지않았다느니 그 모양 그 꼴로 세상을 살면 안된다느니 여러가지 잔 소리가 방안을 넘어서 길거리를 뻔히 배회 할일이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기 근성이 있다느니 너무 허황되서 저 사람 벌써 노망의 단계에 이르렀다느니 아무튼 말 들이 참 많을 것 같았지만 왠지 두려움은 없었다. 꼭 해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는데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은 내 사랑하는 이들은 내 의지에 귀를 기울일 것임에 틀림없었다. 민지만 빼고.
사실 민지란 놈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내 딸로 입적해서(?)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인데 이 녀석은 내가 하는 말에 반론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제기하는 배은망덕하기 이를때 없는 놈이라, 때로는 군밤도 주고 빵도 사주고, 즉 얼르고 달래기를 벌써 8년째 하고있다.
그 외의 내 사랑하는 이 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 것이 '공부를 하면 하늘을 날아 다닐 수도있고, 물위를 걸을 수도있다'고 해도 다 믿는 기특하기 짝이없는 녀석들이다.
나는 그 말을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믿게 하고싶다. 설령 민지같은 녀석들이 계속 생긴다고해도..하늘을 제압하는 길을 또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이 들에게 그 길을 일러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앞에 놓인 렙탑의 전원을 켰다.
화면에서 뭔가를 열심히 바라보며 웃고있는 100일 된 송연이를 보았다.
칼럼을 쓰기위한 잠깐 사이의 마주침이지만 한 달 보름 전, 첫 대면 순간의 송연이와 랩탑 화면에서의 송연이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너무나 귀여워서 몇 일 볼 수없던 차에, 마우스로 송연이의 눈과 앙증맞은 코와 볼과 그리고 그 신묘막측한 입주위를 비벼보고 문 질러보아도 갈증은 좀 처럼 수그러들지를 않았다.
신묘막측! 옳거니~ 바로 그 표현이 적절한 듯 싶었다.
사실 한 달하고도 보름 전에 형님의 딸이 낳은 딸 이라고 소개받았을 때는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그 난감했던 이유는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가 결혼을 하기까지는 한 참이나 남았다고 생각했었다.
따라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할아버지로써의 부자연스러운 삶......
문득 할 일이 뭘까를 이 놈을 눈 앞에 두고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그 다지 뾰족한 송곳같은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몇 년 전, 비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후, 키세나 팍 근처에 200년 쯤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던 광경이 떠 올랐다. 이 아름다운 송연이와 쓰러져 버렸던 그 아름다웠던 나무의 상관관계가 뭘까? 잠깐을 고민하고 있을 때에 그 옛날 세종대왕님의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꽃이좋고 열매가 많다."는 말이 생각났고. 그 분이 틀렸다고 느꼈던 생각이 떠 올랐다. 그 분은 나의 삶이고 내 사랑하는 사랑들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커다랗고 육중하고 수려한 그 쓰러진 나무의 뿌리는 비록 얕았지만 그래도 세종대왕님 보다는 훨씬 기나긴 세월을 이승에서 잘 살았으며 그 존경하는 위인은 누군가에게 받았던 그 대물림의 교육으로 인해서 커다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편견?! 내 사랑들에게 나는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너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냐는 개똥같은 철학이 담긴 묘한 질문들..... 그 들의 대답은 정말 지루해서 들어줄 수가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되 묻고는 한다. "너의 인생을 통채로 걸고싶은 것이 없니?" 곧 머묻거리는 대답뿐....그 것 역시 교육이랍시고 대물림의 정석쯤 되리라고 생각하자니 울화가 치밀어왔다. 틀은 분명 소중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인간이리만큼 debate가 최소한 필요하지않은가?
그래서 위험한 교육을 나는 주장해왔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생전에 성격은 좀 삐딱했지만 특히 부대찌개를 좋아해서 밥 두그릇도 모자라 라면사리를 꼭 추가로 넣어드셨던 우리아버지 00년 00월00일 여기 그냥 잠들다!"
이렇게 의미없는 삶을 우리 사랑하는 이들에게 물려주지않았으면하고 간절한 마음을 가진다.
바람이 불면 때로는 자연의 힘인지 뿌리가 얕아서인지 나무는 뽑혀서 길 에 누울수 있다.
그러나 뿌리가 얕아서가 다는 아니었다고 말하고싶다. 뽑힌 모습이 그 처럼 형편없었다고도 말 하고 싶지않다.
내 존경하는 세종대왕님의 명언이 다 진실은 아니다. 그렇다고 형편없는 괘변도 아니다. 한 쪽만이 진실인양 흑백만을 말 한다면, 내 사랑하는 송연이는 또 다른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 위대한 분과 다를게 없지않은가.
교육은 획일적인 것 만은 아니다. 그 획일성이 꼭 진실이라고 단언해서도 않된다. 진실은 어디에도 있고 누군가는 또 다른 것을 찿기도 해야한다.
바람이 불면....나무는 뽑 힐수있다.
망 중한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바람속을 나는 누운듯 서울 거리를 누구와 함께 걸었다.
옹기종기 다섯 명이 모인 여성회관 앞의 거리는 그 저 뉴욕에서의 바빴던 나를 안식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너무나 넓다란 여유에 나는 슬픈듯한 마음을 애써서 숨기며 누군가가 부여해준 일과를 순응하듯 맡겨갔다. 번민 속에서 살아왔던 터라 그리 아쉬울것도 못이룸에 발 동동 구를일도 없을 일 들이지만 그래도 소중하게 나의 발 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갔다. 알듯 모를듯한 대화들을 유심히 듣는 척 해보지만 시간과 공간과 분야에 대한 벽은 어떨때는 내 버림으로 어떤때는 체념으로 길을 스스로 유도했던 시간들을 보내며 뭔가 안개에 휩싸인 본체를 그것을 뚷어버릴량 매섭게 노려보고 그렇게 시간은 헤어짐으로 내달렸다.
세상속에서 그렇게 나는 송파 여성회관 근처에서 나를 내 버려뒀었다.
걸물이 거기 있었다.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던 위인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호감을 갖게된 인물이다. 연세는 풍성하게 그의 배 만큼이나 드셨고, 풍채도 제법그럴듯한 사람인데 본인의 하는 일이 나와는 별로 맞지않은듯하여 약속시간을 의도적으로 늦추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어리숙한 듯 보였었지만 세월의 버거움이 그 녀를 무쇠처럼 단련시킨듯 가볍고 조용하게 내 뱉어 내는듯한 그 녀의 식견앞에 나는 거의 눌려있을 수 밖에없었다.
이 걸물들의 대화는 위 에 쓰여진 내 글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지금 이 시간에 글을쓰는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 모든 것을 지금까지도 송두리째 압사를 시켜버릴 만큼 내 정신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오~~~~~~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연륜이 뭔가. 물론 다른 분야의 일들이라 당연한 자괴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어느분야에서 모자란듯 규명된 내가 석연치 않았다.
그래서 배움을 그 처럼 갈망 하는가 보다. 물론 세상모든 것들을 다 품을 수는 없을것이라고 최면을 걸어본다. 그러나 상투적인 것만을 강조하려던 사람의 비애를 아는 사람들은 내 뱃 속을 서성이기 시작했고.......
유익했지만 몇가지는 버리고싶었던 그 시간은 종착역에 다 다랐는데....
그 중의 그는 모두를 향해서 서울의 달과 미국의 달을 이야기 했다. 미국의 달은 서울의 달 보다 세 배쯤 크다고......
뭘까? 나는 또 한번 그를 보았다. 그의 둥지와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의 감성은 나를 꼼짝 못하게 하고있었다.
그 날 나는 그에게 졌다. 그 가 낚은 세월에 부러워서 그 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부러웠던 것을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나눌까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달은 서울의 달 보다 세배 쯤 큰 거 같아요!
미국의 달은 서울의 달 보다 세배쯤 크단다 애~들~아~~~~~~
나는 영화를 무척좋아한다.
오랫만에 모처럼의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근처 가까운 영화관을 찾았다.
눈에 보이는 영화관들의 거리가 다가오자 뭔가 어색하지만 흥분이 전신을 감기시작했다. 그 도 그럴것이 한 달여 간 미국을 떠나서 이리저리 배회하며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다가 뭔가 나를 위한 즐거움은 한 번도 갖지못했던 답답함은 흥분이 내 몸을 감기에 충분했었다.
잠시 동안 안내 데스크위에 떠 있는 영화의 제목이며 그 옆에 놓여있는 팝콘이며 오징어 치즈스틱등을 바라보며 무엇을 보고 먹을까를 고민하던 중 예쁘장하게 생긴 아르바이트 생 인듯 어린 언니가 어떠한 영화를 관람하기를 원 하냐는 질문에 내가 좋아하는 차 승원이 나오는 영화와 그리운 고향, 내 가족이 살고 무지무지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미국영화 중 어떤 것을 먼저 볼까를 생각하던 중 나는 아이언 맨 2를 보기로 결심했다.
어두운 영화관 좌석사이를 지나서 내 좌석을 확인하고는 구름에 엉덩이를 던지듯이 신음과 함께 털썩 주저앉으며 사두었던 오징어며 치즈스틱 팝콘, 망고쥬스를 보호했다.
영화는 나를 홀렸고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 전개를 음미하던 중에 야~하!!
글쎄 우리동네인 NY Queens라고 대형 스크린에 영화의 배경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사실 우리 동네는 무지무지하게 많은 백인들이 많이 사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 견해로 뉴욕은 아이비 리그의 본 고장이며, 그로 인한 교육환경의 발전이며 수 많은 인재와 다 문화의 장점등... 그리고 미국 전 지역에서 평가받은 최 고의 학군으로의 인지도는 백인 아이들만 시글 시글한 전통 백인동네보다도 훨~씬 나은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oooops~ (인종차별적인 발언인가??)
한 참 영화를 보는 중에 헐리우드 영화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대형 성조기를 또 보고말았다.
으~~촌 스~러~워!!
이 미국인들은 가끔 촌 스러울 때가 많다. 그 곳에서 살며 나는 가끔 그 들의 맹목적이리만큼 저돌적인patriotism을 보았다.
뉴욕에는 100년 전에 건축했던 고층 빌딩들이 많다. 새로 말쑥하게 지어진 새 건물들 보다는 그 들은 특이하게도 옛 것을 고집한다. 한국에 한옥 보존지역이 있다면 미국에는 land mark가있다. 윗 쪽의 맨하탄과 미드타운 그리고 다운타운은 맨하탄을 세 분활하여 표현하는 지역구분방법인데, 그 중 다운타운은 오헨리 가쓴 '마지막잎새'의 배경이 되는 소호빌리지의 건축물이 지금도 옛 모습을 지닌채 변하지않고 보존되어지고있다. 생각같아서는 '쌰 악~ 밀어버리고 월가의 세련됨과 어울리는 멋진 현대식 건물들이 지어지면', 하는 바람들을 가진 사람들 마음처럼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미국인 들은 절대 그렇게하지않는다.
먼 옛날 인디언의 애환이 담긴 반석위의 건물 숲! 그 게 맨하탄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몇 편 중 한편에는 꼭 나타나는 대형 성조기!
변 하지않는 소호빌리지의 빌딩들!
브로드웨이의 도도함!
허드슨 강의 물줄기!
아이비리그 대학의 열정의 학문탐구!
그리고 여전히 들려오는 세계 청년들에게 외치는 소리들!
이러한 것들이 크게 똥 고집이 되어서 도도하게 굴러가는 땅!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러한 고집이 가치가 있다면 물려줄만 하지않을까?
뉴욕에는 산 다운 산이없다.
그래도 사람들이 가끔 찾아가서 향수를 달래고 또 때로는 가족들과 함께 가든 파티를 즐기는 산의 이름은 '베어 마운틴'이다. 한국에 비하면 산 이랄것 같지가 않은 조그마한 이 산은 사시사철 한국과 비슷한 맛을 느낄 수있어서 나도 역시 찾아가고는 했었다.
그 날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 공휴일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 전날에 이 날이 과연 청명한 날씨를 만킥할 수있을만큼 화창할까? 를 고민하며 새벽 하늘을 몇 번이나 바라봐선지 그 날의 아침은 멍멍함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한 내 머리 속에서 특별히 빛나는 기억이되어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몇 몇의 부모님들도 따라가기를 희망해서 다소 분주한 아침이었지만 이것저것도 점검하고 또 근처 한국인 수퍼마켓에서 과일이며 간식거리 스넥들을 분주하게 장 바구니에 담는 순간에도 조급한 아이들의 마음은 나를 끊임없이 종용해댔다. whitestone bridge를 건너서 또Huchinson parkway를 굽이굽이 돌아서 여기저기 아름답게 반짝이는 맑은 호수사이를 지나서 울긋불긋 시원한 단풍을 향해서 탄성을 한 번 질러보고 또 다른 다리를 건너자(타판지 브리지) 저 멀리 숲 기슭에 또렷하게 보이는 베어 마운틴이 수줍게 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운전솜씨에 몇 아이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러대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산 아래에서 보이는 미국적인 집들이며 물 줄기며 수채화를 그려논듯한 산 자락의 베어마운틴 단풍들은 한 순간 활짝 웃기 시작했었다.
조금 후 시장기가 밀려왔다.
거기 seven lake(일곱개의 천해 호수)에는 풍성한 식사를 할 수있는 바베큐 그릴들이 놓여있어서 불을 피우고 고기와 생선들과 소시지를 올려놓고 부모님들 몇과 담소를 나누며 지나가는 시간을 즐기고있었다. 전혀 아깝지않은 시간이라고 생각이들만큼 거기에있던 모두는 공감했었으리라!!!
근처에 그 유명한 육군사관학교와 전쟁박물관이있다.
그 날은 휴일이라 육군사관학교는 갈 수없었고 대신에 전쟁박물관을 가기로했다.
들어가는 길이 자그만하지만 오래된 건물들은 길과함께 잘 어울리는 멋진 모습의 그림 그 자체였다.
정문을 지나서 지하와 지상의 길 중에서 지상을 택해 올라가 한 줄로 주~욱 서서 이동하는 우리 그룹은 1차와 2차대전을 지나며 사용했던 각 종 살상무기들을 살펴보며 3차 전쟁이 오면 어쩌나 하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아돌프 히틀러의 금장 권총을 보며 뭔가 모를 측은한 상념에 빠져있다가 잠에서 깨어난듯 다시 몸을 추스려 옆으로 쓰러지자, 무시무시하게 큰 대포며, 포탄이며.... 그리고 또 그 옆으로 발 걸음을 옮기자 죽은자의 것으로 보이는(누군가의 장비인 듯한데) 구멍이 뻥 뚷려있는 헬멧이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어떤 장난꾸러기의 입으로 내는 총소리에 적막한 공간에 긴장감이 돌았다. 잠깐사이 몇 몇 아이들은 그 소리를 따라하기 시작했고 지하의 공간은 순간 너무 소란해졌다.
참을 성 많은 몇 명의 미국 사람들이 빙그레 웃으며 귀여운듯 그 광경을 보고있었고 뭔가 민망한 광경을 제제하고자 장난꾸러기들을 내게로 불러들였다.
What does mean public place, Aaron? huh~
이 대화로 시작된 잔소리는 몇 분을 흘렀는데, 고녀석들의 변명과 흥미거리는 실제 총소리가 어떨지 무척 궁금했었고 지하에서 들리는 에코사운드는 영화에서 들리는 소리와 비슷해서 실감나더라는 이야기였다.
실감? 요 녀석들 너희가 실감의 공포를 알아? 다른 것도 아닌 총소리의 실감을?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왠지 다 하지못한 그 아이들에게의 충고가 충분치않음을 나는 자책하고있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조용히 충고를 시작했다.
그 게 흥미로운 대상이라고 생각하니? 이념이며 괘변을 다 접어두고....그 들의 전쟁에서 수 많은 인명이 살해됐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서로 죽였는데.....아무도 그 어떤 이유에서든 서로를 죽일 수있는 자격은 없는거야....
그리고 생각났다. 또 하나의 해 줘야 할 말이...
무기없는 세상을 만들어 줄 수있겠니? 총 쏠일 없는 세상....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어노는 세상을 너희들이!!!
좀 더 넓은 것을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이었던가!
몇몇의 사람들이 멀쑥하게 잘 차려입고 세련되고 멋 있는 말 솜씨로 우리 친구의 동네에서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요 점인 즉 잘 살게해주겠다는 말 이었다.
그래서 잘 살게 해주는 방법을 설명해 달라고 묻자.
당신들의 있는 것을 가져가고 자신에게 있는 것들을 주겠다고 했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럼 그렇게 하자고 했다나?
그 들은 진짜 좋은 사람들이었다. 친구 동네의 몇 사람에게는 분명히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나머지 몇 사람은 자기 동네의 것들이 그 사람들이 가져온 다른 것들에 비해서 턱없이 말도 않되는 가격에 바꿔짐을 알게 되었고
그 동네 전체의 사람들은 그 사람들과 거래를 하지않기로 했다나?
서로가 만족스럽고 치우치지 않는 것이 오래간다고들 한다.
그래 그 말이 맞는것 같다.
바보가 아닌이상...
우리는 양쪽 사람들이 어떻게 했었어야 좋았는가를 일찍부터 알고있었다.......
어느 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 들 중에서 제법 마음이 쏠리게 되는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그 저 평범한 의복을 걸치고 있는 위인 이었지만 어쩐지 그 사람의 슬픈 듯한 웃음이 마음에 들어왔다.
한 마디 말 조차도 아끼는 듯 보여 커다랗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었지만 가끔은 모두가 경악하리만큼 독설조차도 서슴지 않는 내공도 보였고 그 독설은 어쩐지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들어오자, 그 사람편이 되고싶어서 내 마음은 이미 그 사람곁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또 주위의 눈치조차 살피지 못하고 해야 할 말들은 주저하지않는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는 많은 핀잔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도 굽히지 않음은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작년 이 맘때 쯤, 나는 더 할 수없는 슬픔 속에서 거의 한 달 동안 그 사람 이라는 인간을 열심히 내 친구와 제자들에게 설명했었다.
뭐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참으로 허무맹랑한 말들을 쏟아 놓았던 그가 내 사랑을 버리고 훌쩍 떠나버렸을 때는 한 없는 측은함에 그 저 아무 생각도 할 수없었다.
사람사는 세상이 뭘까를 생각해 봤다. 그런데 막상 생각하자니 남 들이 다 알고 또 그렇다고 믿는 것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많은 피 조물들이 어울려 살며 그 마다 서로 좁음을 토로하고 싸움도 하지만 사람만은 내 영역에 대한 각별한 욕심이 더 한 듯한 생각이 들었다. ( 물론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을 나는 보고있다.)
이 것역시 깨닫기가 쉬웠던 것은 내가 항상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옳은 말을 할 수있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지만 참 된 옳음을 알 수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않음에 때로는 삶이 서글퍼짐은 어쩔 수없는가 보다.
작년에 내 딸에게 했던 말들을 오늘 나는 새삼스럽게 되새겨 보고있다.
딸!
옳은 것을 구분해라!
옳지 않은 것은 너의 애비 조차도 옳지 않다고 말 할수 있을 때,
나는 너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될테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옳은것을 옳다고 바르게 구분할 수 있으면 행복할 것같다.
편견없이...
세상사는 사람들을 위해서......진심으로...
그래서 우리는 항상 뛰고있다..................
우리가 만들지 못했던 세상을 우리 자녀들이 만들기를 바라며!
내 이름이 사라졌다.
부모님이 지어 주신 내 이름이.
별로 맘에는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이름인데....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던 내 어린시절의 친구들까지도 이제는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직장을 다닐때도 누군가 불러줬고 결혼 할 애인이 친하게 불러줬던 내 이름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이름 대신 '사랑이아빠'라고 불러주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며,
어느덧 장마에 오이 자라 듯 불쑥 커버린 자식을 보며 소스라친다.
부모는 자식에게 이름도 양보해야 되나보다!
그런데 슬프지 않은 이유는?
가파른 산 능성이를 가빠오는 숨을 붙잡고 올랐다.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땀은 얼굴을 적시고 곧이어 가슴을 적시고, 바지가랑이를 지나 양말까지 촉촉하게 만들어버렸다. 그 뿐 만인가? 등 까지 다 젖었다.....젠장.
내가 가진 옷 가지라 해봤자, 입고있는 T 셔츠 한 장인 것을 이제는 땀 냄새나는 이 구질구질한 셔츠를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었다.
어떤 위인은 "산이 있어서 산을 오른다"는 명언을 남겼던가?
'누군가는 명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명언이 되었을 뿐!'
내 마음의 꼬인부분이 이 위인의 명언을 사정없이 비꼬고있었다.
그래도 저 등성이를 넘고 한 시간여 쯤이면 산 정상에 다 오르겠지?
누군가 내게 말했던, '목적의식을 가지고 오르다보면 정상이라는 목적을 성취할 수있다'고 침 튀겨가며 강조하던 말이 생각나서 나는 믿어보기로했다.
그런데 옷에 대한 집착은 비교할 수도 없는 또 다른 절망이 나를 비참하게했다.
정상에 가깝게 올라왔다고 생각 할 때쯤, 나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을 기대하지 않았었다.
내 앞을 앞서서 오르고 있는 커다란 엉덩이, 그 엉덩이 보다도 훨씬 더 큰 절망때문에 나는 또 한번 절망했다.
뉴욕에서는 알라스카산 게를 한 트록 먹을 수있다!!!!
단, 산 신령처럼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도를 깊이 알고, 인품이 출중하게 보여야되며, 그리고 능공허도의 도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단돈 $34면 진짜 한 트럭을 먹어도 there is no ploblem!
어느 날이었던가? 게 원산지에 대해서 토론하는 토론족들을 지켜보다가, 어느 불리한 중생이 그 맛의 진면목에 대해서 화제를 슬쩍 바꾸며, 그 맛은 해태 맛 동산 맛이라는 둥, 롯데 풍선껌 맛이라는 둥, 또 농심 새우깡과 같이 먹으면 원기 회복에 좋다는 둥 여러가지의견들을 내 놓았다.
그 말을 듣던 다른 한 쪽의 토론 족 중 한 사람은 두 손을 좌우로 흔들고 엉덩이까지 씰룩거려가며 그 방법도 안되자, 그 황당한 종족의 멱살을 잡고 그 맛 많은 확실히 알고있다고다.
그 맛은 지 어렸을적에 먹던 '달고나'맛과 흡사하며 때로는 그 옛날 길거리에서 설탕과 소다를 배합하여 만든 '뽑기'맛과 때로는 비슷해지며, 또 흡혈귀들이 보양식으로 즐겨 먹는다고했다.
내가 참견해야할 싯점은 어데일까를 계산하던 중, 나는 그만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니 들이 게 맛을 알아?"
너무 목소리가 컸는지 곧 조용해져서 반성했나 싶었는데, 그 토론족들은 내게 되 물었다.
"니 가 게 맛을 알아?"...............................
하~~ 나 참! 다음에는 산 신령 처럼 한 트럭의 게를 거뜬히 먹는 사진을 항상 지참하리라 다짐했다.
별 천지라고들 하던데..... 나 보다 게를 덜 먹었던 사람들은 나 에게 되 묻는다.
"니가 게 맛을 알아?"
원기회복에 좋고, 보양식으로 먹는 달고나, 뽑기, 해태 맛 동산, 롯데 풍선껌, 농심 새우깡,
이 맛이 아니면 니 가 먹은 게는 틀림없이 고래였을거라나?......
하~~~~ 참.
이런........
그래서 결심했다.
진짜 게 맛을 그 들 빼고 가르쳐 주겠노라고.
젊은 친구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런가?
하바드대학의 어느 한켠에는 '어제 죽은 자가 그 처럼 살고 싶은 오늘'이라고 씌어있다. 딱히 이 것이 이 것이라고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해석이라고 말 할 수있지만, 작자의 신분이 학생이라는 것을 감안 할 때 학구에 대한 열정의 피력이며 다짐이리라고 생각된다. 대견스럽다. 누구는 젊음을 생각하다, 배가 터져오는 것 조차 모르고 살았는가하면, 또 누구는 만끽 한답시고 백 발이 되어버렸는데,
그는 그 대견한 다짐의 결실이 지금은 얼마만큼 성취되었을까? 하는 질투가 슬며시 머리를 듬은 어찜인가?
양면성이리라! 내가 가진 생각이 콩 깍지 안에 알맹이가 희든 검든 그저 그렇게 상상하며, 그 청년 처럼 그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그리고 살짝 질투스러움을 드러내는
뭐~거시기!
그럼 우리는, 그리고 내 새끼들은 둘 중의 어느 부류에 속해있는가? "어제 죽은 자가 그 토록 살고 싶어하는 오늘"을 안타깝도록 노래하며, 헐떡이는가, 아니면 마음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가, 아니면 젊음과 만끽을 오가다 백발이 되어가는가?
삶에서 부르지 말아야 할 노래를 소개하길 원 한다.
거시기 하기때문이다.
한 손에 막대 쥐고
한 손에 가시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해야 할일들이 참 많았었다. 그런데 한 일이 별로없다면, 그 다음 수순이 양 손에 막대와 가시를 바쁘게 쥐어 여유없이 지나간 덧 없는 세월에 백발을 걱정해야만 해야하는지, 참 거시기 할 뿐이다.
젊음을 진짜 아껴야만 한다. 최소한 그 가 무엇을, 그리고 이 싯점에서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는 자격지심으로 볼 필요는 없다. 그 젋음을 '어제 죽은자와 살고싶은 오늘'같이 살아서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오래 사신 분들이 반론한다면 그냥 웃어주자. 답은 그나 우리나 그 청년이나 아무도 몰랐고, 또 앞으로 그 누구도 모를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것을 알까? 그 청년처럼 아이비 리그를 가도 후회하고 안가도 후회한다면,
못 가는 서러움은 어떠한 한으로 남을지를.....
그래서 그 청년이 부러웠다.
그러나 지나친 꿈과 집착은 몸에 해로울 수 도있다....
그저 뭔 말인지......
12년 세월 동안 뉴욕의 삶은 제법 그럴듯했다.
한 19년 전이었던가? 어느날 지리산 자락을 여행아닌 여행을 했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 날에 잊을 수없는 짜릿함은 한 참이나 지나서, 즉 잔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젊음의 패기만을 믿고 길 거리를 지나가며 아이스크림을 스스럼없이 먹던 시절을 그리워 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잊을 수가없다. 허기 진 몸을 거친 비탈길로 끌며, 어디선가 공급되어질 것을 믿고, 밥 한 술을 무척 그리워 할 즈음에, 안개와 함께 배시시 몸을 숨기고 있는 낡은 초가 집을 나는 발견하고 밥 한 술을 구걸하듯 주인에게 나를 의탁했었다.
시골의 정겨움을 느낄 수있는 커 다란 박에 밥 몇 술 그리고 그 위에 담긴 정체가 불 투명한 시커무레한 나물 조금, 또한 한참이나 뚜껑을 열어놓았든가 혹은 몇 년 동안 독의 뚜껑을 닫아놓지않아 지리산 자락의 공기가 다 목욕을 해서 색깔이 변할대로 변한 듯한 고추장..... 이게 비~빔~밥~의 의미!!!!!
아무리 배가 요동을 치고 힘겨움에 눈물겨워 '눈물젖은 비빔밥을 먹어보았는가?'를 실천할려고 해도, 용기 백배와 성의의 상관관계를 계산할려고 해도 도저히 먹을 수가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공포스러웠었다.
아니 음식이 공포스러웠다는 의미를 나 외에는 지구상에 누구도 알 수없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문맥상 맞지않는 의미를, 나는 그 순간의 공포를 잊지못한다.
주인 영감님을 의식하고 차마 어쩔 수없이 그 공포를 한 입 물었다.
아~~!! 이 럴 수 가...
보일 때의 공포는 보이지 않는 순간, 이미 공포가 아니었고 희열이되었다.
그 순간 이후 나는 그 공포와 희열 그리고 이어졌을 또 다른 희열을 전혀 기억 할 수없다. 너무 허기져서 '시장의 반찬?' 그 예찬일까? 이유야 어쨋든......
무엇인가?
겉만 멋진것도, 잘 포장된것도, 겉이 멋없는것도, 잘 포장되어지지않은것도... 살아가자니 끊임없이 반복되어지는 '허실' ' 실허'를 무수히 볼 수있었다. 처음에는 구분하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공포의 순간까지도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얻었다.
그 때의 비빔밥과 그 공포, 희열은 살아왔던 시절의 흐트러짐없는 버팀목이되었다.
12년. 뉴욕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동안 나는 그 어리석음을 잊지않았으며, 항상 마음 속에 외쳐왔다.
애들아~~~~~~
"진 실 이 있 는 데 무 엇 이 두 렵 느 냐 "
가벼운 인사는 동전과 같습니다.
그리 아까울것 없고 또 나눠 줄수있어 부담없고, 그처럼 가벼운 것이 때로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렇게 즐거운 것이 인사와 동전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전 어느 날, 두고보기에도 아깝고 말만 들어도 가슴 뭉클한 고국 대한민국에 첫 발을 내 딛은 후, 바쁜 나날에 쫓겨서 뉴욕에서 그 처럼 했던 동전 버리기가 새삼 그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뉴욕과 가족과 제자들과 했던 'hi' 가 그 처럼 사무칠지 의아스러웠습니다.
어느덧 두 번의 바뀌어진 세상동안, 뉴욕에서 그렇게 크게 배웠던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처럼 아까울것없이 버리고 수 없이 나눠줬던 동전들은 삶 속에서 일었던 잔잔함의 소용돌이가 아니었었나 생각됩니다.
소중한 이 곳 서울에서의 삶 속에서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한 '대한민국' 한 가운데에서 던지고 아까울것없이 나눠주고 부담없이 버리는 동전들을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멀리 내 둥지를 향해 동전을 던집니다.
얘~들아 받거라이~~ㅠㅠ~~
Are you there?
격세지감입니다!
굶지않기위해서 부모님들의 허리띠를 수 십번이나 졸라메다가 희게 퇴색되어버렸던 시대가 몇 십년 전이 었는데, 지금은 넘치는 풍요속에서도 자녀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또 다른 허리띠를 동여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것은 부모님의 자녀사랑에 대한 헌신이겠지요.
한국의 모든 부모님들은 그 헌신과 사랑에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눈물나도록 수고로우심이 사회를 숙연하게 하고 미국의 대통령까지도 대한민국의 학습열의에 찬사를 보내곤합니다.
작금의 교육열이 주는 희비가 어떻든 이 시대를 우리는 긍정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아무 이유없이 유연하게 보아야 할 듯합니다.
사회가 우려하는 허영심에 부합된 자식사랑을 가진 부모님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모인 내 배움이 덜해서,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라고 그리고 더욱더 학구열에 갈증을 느끼길 소망하고 독려하는, 자식을 배려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책망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사회는 그렇게 여유없어보이고 삭막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여러가지의 격세지감의 공존의 미학이 내재되어있어서 좋은 듯합니다.
우리는 뉴욕에서 수 많은 이 민자 가정을 보며, 수 많은 애환속에서 피어나는 교육의 꿈을 보아왔습니다.
때로는 처절하리만큼의 투쟁이 있지만 부모와 자식이 서로 만족하는 수만은 삶의 모습들을 보아오며 동여맴의 헌신이 아름다움을 진실로 알게되었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많은 부모님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녀들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겸손을 가르키며 말씀하십시오.
"네가 지금 살고있는 세상의 틀 속에서 스스로 안주하지말고,"
"네가 만든 멋진 틀 속에서 나를 살게해주겠니?"
옹달샘과 바람과 나뭇잎이 전하는 말.....
복잡한 지층을 뚫고 세상 밖으로의 물길 여행이 옹달샘을 만든다.
지표면에 도달한 물줄기가 한 군데 고여져서 더 이상 물줄기의 공급활동이 중단 된다면 이 물은 더 이상의 옹달샘이 아닌 곧 썩어져서 악취가 진동하는 폐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움직이는 물은 자연과의 친화 속에서 끊임없는 요동침과 부딪힘을 통한 자정을 이행함은 물론이며 더불어 물은 자연에게 생명 줌을 수행 할 수 있었다. 깊은 산 골의 물과 지상에 널려있는 헤아릴 수 조차 없을 옹달샘들이 은혜의 혜택을 모든 생물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세상에는 귀 기울여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길을 가자면 들어야 할 것들과 들려오는 것들이 부지기수 만큼이나 많다.
옹달샘의 귀중한 자연됨은 움직임을 통한 정화로 가능했 듯이, 길가를 걷자면 스쳐 지나가고 있는 바람하며 거대 목에 여기저기 달려있는 나뭇 잎들의 애환들이 온 세상을 향해 끝없이 말하고 있고 그 표현은 지금도 계속 되어져서 세상에 말들을 남기어 가고 있다.
복잡하고 난해한 모든 허브를 떼어내 버리고 이 들이 말하는 자연을 들어봄이 필요한 소중한 시기가 도래하는 것 같다. 인위적이며 제작 되여 지는 세상 속에서 그 인위성을 꿈꾸며 묻혀져 가는 스스로의 우리를 스스로 자정 해야 할 때가 도래하면 좋을 듯하다.
오늘은 귓가에 꽂은 인위 물에서 흘러나오는 무엇인가를 듣고 세상과 담을 쌓아버린 어린 영혼에게 불쑥 참견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영혼은 나에게 비수같이 질문해 왔다.
‘당신에게 보이는 바람과 나뭇 잎들이 뭐라고 말 하던가요?'
'음........그 것에 갇힌 너에게 자기들의 노래를 듣도록 알려주라고 하던데!’
까뮈에게 태클걸기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정상까지 밀어올리는 것도 끔찍하기 짝이없는 일일텐데 정상의 싯점에 도착하여 한숨 돌리려는 순간 그 바위덩어리가 시발 점으로 다시 굴러떨어진다면 그 처럼 허무하고 황당한 일이 없을 것이다.
신의 노여움을 산 이 위인은 그 형벌로 인해서 더 할 나위없는 절망스러움에 찰나의 호흡조차 감당하기 어려웠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듯 하다.
실존주의 철학자 까뮈는 이 시지프스 신화를 자신의 달필을 통해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며 이루고자 노력했던 모든 욕망들이 인간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에 대해서 부조리라고 표현하였다.
세상의 모든 이치들은 자신이 정말 원 하는 것이면 정 반대로 향하게 됨이 다반사이며 그로 인해서 절망할 필요도 없고 결국 초연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내외적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시지프스의 신화를 이끌어 내어 그 논리와 부합시키고자 했다.
즉 부조리의 삶에 노출된 자신의 인생을 인정함이 우선 되어져야만 내외적인 평상심을 가질 수 있고 아울러 삶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매력적인 이론이다.
그러나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처럼 삶이라는 바위덩어리가 반드시 원점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삶 가운데서 노력을 경주하다가 보면 그 무개 중심이 앞으로 변하여져서 대부분의 바위덩어리는 그 다음의 굴곡을 향해서 굴러가고 또 새롭고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르는 수고를 인간들은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가 현 세대의 인간과 시지프스 신화의 위인과 다른 삶일진데 까뮈는 실존주의 철학자라는 당대의 저자로써 그 핵심을 간과해 버렸다.
원점으로의 회귀에 대한 절망과 전진을 위한 굴러 떨어짐의차이!
그래서 시지프스의 신화는 까뮈가 다시써야만 될 저서가 되었다.
Edupia NY for the 공부...by the 공부...of the 공부....이 늠아
April 19, 2013 at 3:27 am